[사설]예산 기한 내 처리와 폭력 방지, 올해 시행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새해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8년 동안 한 번도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 의원이 육박전을 벌이는 사태가 해마다 되풀이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예산안 처리 때 반복되는 국회 폭력 등을 방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개정안은 법정 시한 48시간 전까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서 예산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회부토록 했다. 예산안과 관련 법안에 대해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12월 1일까지만 허용하는 안전장치를 뒀다. 예산안을 기한 내에 처리해 국정운영을 정상화하자는 취지다. 이 법안을 시행하려면 국회 예결특위를 상임위 체제로 변경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필리버스터를 종결하거나 신속처리(fast track) 안건을 지정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5분의 3’ 룰은 미국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때 적용하는 ‘압도적 다수(supermajority)’ 기준을 참고한 것이다. 미국 의회에선 소속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자유 투표를 하는 의원이 많다. 한국처럼 의원들이 당론에 예속돼 투표를 하는 분위기에서 이 제도가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이 명시된 헌법 조항도 사실상 무력화한 상황에서 하위법인 국회법 규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구속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의원들이 국회의장석이나 상임위원장석을 점거할 경우 수당을 삭감하도록 했으나 더 강한 제재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의원의 회의장 출입방해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처벌조항을 두지 않는다면 회의장 점거나 회의 방해 행위를 막는 데 실질적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물러터진 내용이라면 국회선진화 방안도 결국 이빨 빠진 호랑이에 그칠 수 있다.

국회 운영의 개혁은 총선 민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소수파가 폭력으로 의사당을 점거하거나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다수파와 협상을 통해 의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은 총선 민의에 반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시행 시기를 이번 국회가 아니라 차기 19대 국회로 정했다. 국회 폭력을 막기 위한 선진화 방안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야 할 텐데도 뒤로 늦추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국회는 올해 말 예산안 처리 때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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