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킬링필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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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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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1975∼79년 집권한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가 주민을 집단 학살한 장소를 말한다. 킬링필드는 한 군데가 아니다. 미국 예일대 조사팀은 약 2만 곳의 공동묘지를 조사했으며 거기서 138만6734명의 희생자를 확인했다. 캄보디아인 기자 디스 프란은 크메르루주에 잡혔다 태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시체 썩은 물로 가득한 킬링필드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그의 체험이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킬링필드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크메르루주는 집권하자 자본주의와 연루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자 했다. 안경을 썼다거나 손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으로 지목돼 처형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크메르루주는 어른은 자본주의에 오염돼 있다고 보고 어린이를 새 세상의 주역으로 내세웠다.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격리해 수용하고, 크메르루주에 불복하는 사람은 적이라고 세뇌시켰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방법을 가르친 뒤 어른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데 동원했다.

▷미국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 놈 촘스키는 크메르루주를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학살은 정부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 복수심에 가득 찬 농민, 통제를 벗어난 군인들의 만행”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크메르루주가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크메르루주의 2인자 누온 체아(85)를 비롯해 키우 삼판(79), 이엥 사리(85) 이엥 티리트(79) 부부 등 4명의 반(反)인륜 범죄에 대한 재판이 그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시작됐다. 독일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받는 재판이다. 크메르루주의 1인자였던 폴 포트는 1998년을 전후해 투항했으나 캄보디아 정부의 묵인 아래 재판도 받지 않고 죽었다.

▷킬링필드 재판은 학살로부터 30년 이상 지나서 열리고 있다. 반인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시위하는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북한 김정일은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북한에는 지금도 20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언젠가 꼭 열려야 할 세기적인 재판에 대비해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놓을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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