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재훈]에너지 요금 왜곡 ‘고장난 신호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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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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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정재훈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지난 주말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 ‘메아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시민이 많았다. 많은 비와 함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메아리가 지나간 지역에는 전신주와 나무, 신호등이 쓰러지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태풍 메아리가 지나간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길은 유난히 교통정체가 심했다. 평소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내외지만 이날은 1시간 이상 걸렸다. 나중에 보니 사거리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점멸하고 있어 교차로 사거리에서 차들이 심하게 엉켜 있었던 것이다. 신호등이 제 기능을 못하면 국민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전체가 혼란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에너지 요금은 시장에서 적절한 신호등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에너지 소비자들에게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소비 및 배분을 할 수 있도록 적정한 신호(Signal)를 보내고 있을까.

전기는 석유와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사용해서 만드는 2차 에너지다. 아무리 효율적인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1차 에너지에서 전기로 전환되는 비율은 50%에 못 미친다. 전기는 편리하고 질이 높은 에너지이지만 2차 에너지이므로 효율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요금은 1차 에너지보다 높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선진국의 50% 수준이고, 현재 한전의 전기요금 원가회수율은 86%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요금이 이렇듯 저렴한 까닭에 소비자들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올해 1월 17일 혹한에 따른 난방용 전열기 사용 폭증으로 전력수요가 7314만 kW를 기록해 동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전력수요를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은 1214억 달러(약 140조 원)이다. 이는 지난해 총수입의 29%에 해당하고, 우리 기업이 반도체와 선박, 디스플레이패널을 수출한 금액과 맞먹는 규모다.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석유 파동 등 국제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국가 전체가 큰 영향을 받는 등 취약한 면을 보여 왔다.

1998년 이후 2008년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에너지 원단위(총 에너지 사용량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가 2009년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다. 에너지 원단위는 한 나라의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이 수치가 상승세로 전환됐다는 것은 에너지 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장 내의 어딘가에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요인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가격은 석유나 가스 대신 효율이 낮은 2차 에너지인 전기 사용량을 늘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에너지 위기에 대한 국가적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빈번히 나타나 지구촌에서는 저탄소 사회로의 이행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머지않아 도래할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는 가정에서든 기업에서든 현재와 같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 시장의 신호등으로서 소비자들의 올바른 행동 기준으로 작용해야 한다. 고장 난 신호등처럼 국민에게 혼란을 유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경제체질을 다이어트하고 에너지 소비와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에너지 가격이 에너지 시장에서 적정한 신호등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정재훈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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