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비상장 계열사, 경제 正義는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1일 03시 00분


기업주들이 조그만 자회사를 세워 자녀에게 물려준 뒤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우고 증시에 상장시키는 방식으로 부(富)를 대물림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 재산을 자녀에게 빼돌리는 과정을 땅굴 파기(tunneling)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헐값에 주식 넘겨주기나 전환사채(CB) 활용법이 유행했으나 세무당국에 쉽게 노출되면서 최근에는 일감 몰아주기와 비상장 계열사의 거액 배당 수법을 선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 기준 30대 그룹 총수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46%였다. 전체 계열사 평균치 28%보다 월등히 높다. 일감이 밀려드는 20개사의 매출은 5년 사이에 평균 3.3배로 불어났다. 영풍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 33.3%를 보유한 영풍개발은 계열사 건물 관리회사로 지난해 매출 132억 원 중 130억 원이 그룹의 일감이었다. 현대자동차 롯데 태광 대림 GS그룹도 총수 자녀가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대거 밀어줘 왔다. 총수의 자녀가 대주주이면서 단기에 급성장하는 시스템통합 광고 물류 건설회사들은 땅굴 파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장사와 달리 경영에 대한 외부의 감시가 거의 없는 비상장사들은 극소수 주주들에게 거액을 배당하는 ‘현금 잔치’를 벌인다. 4월 말까지 현금배당을 결의한 비상장 기업 1688개사에서 1억 원 이상 받은 주주는 작년 237명에서 올해 578명으로 급증했다. 100억 원 이상 배당받은 주주도 6명에서 14명으로 늘었다. 삼성코닝정밀소재 현대종합금속 등의 올해 배당금은 작년 순이익을 크게 웃돈다. 대주주 맘대로의 통 큰 배당은 회사 재산 빼먹기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절차 문제만 없으면 그냥 넘어가고 있다.

기업 오너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녀를 알짜배기 회사 소유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편법 상속 수단으로 악용돼도 감시와 규제가 따르지 못한다. 일감 몰아주기는 정부가 2007년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로 규정했지만 처벌은 태광그룹 한 건뿐이다. 유망한 사업기회를 자녀 회사에 넘겨주는 행위도 내년에야 금지된다.

천민(賤民)자본주의가 활개치고 경제 정의가 쇠퇴하면 사회통합을 해친다. 대기업 비상장 계열사에서 변칙과 탈법이 판치지 못하도록 감시와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공공 부문의 입찰제도 같은 조달규칙을 만들어 공개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를 잃고 존립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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