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곽승준 위원장은 왜?

  • Array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연수 산업부장
신연수 산업부장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의 과점 체제와 수직계열화 확대로 경제 전체의 창의력과 활력이 약해지고 있다.”(2011년 4월 26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쓸 만한 기업들은 거의 4대 재벌로 편입됐다는 지적이 있을 만큼 경제력 집중이 심화돼 사회통합을 해치고 있다.”(2003년 2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기업 때리기는 모든 정권의 18번

연기금을 통해 대기업을 견제해야 한다는 곽 위원장의 발표를 보고도 낯설지 않았다. 외환위기와 함께 집권했던 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에 나선 데 이어 노무현 정부도 4대 개혁의 하나로 재벌개혁을 추진했다. 물론 명분은 지금처럼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제구조를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역시 새로운 레퍼토리가 아니다. 2002년 김대중 정부도 추진했고,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명문화했다. 곽 위원장과 일부 한나라당 소장파가 들고 나온 이슈가 그다지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와 달리 ‘창의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촉진한다는, 세계 기업사에서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대기업 지분을 5% 내외씩 가진 연기금이 주주권 행사를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옳다. 연기금은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대기업을 좀 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고 기업을 오래가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연기금이 투자 수익성을 높인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대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한다거나 대-중소기업 상생을 촉진한다는 얘긴 못 들었다. 오히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지배구조는 장기적 투자보다 주주 배당을 우선하고, 납품단가는 깎아 기업의 단기 이익을 극대화한다.

만약 연기금이 일반적인 주주들의 행동 원리와 달리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높여주고(대기업 이익은 줄어든다),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전망이 불투명한 대규모 투자를 하도록(배당이 줄어든다) 행동한다면 그건 정부 정책을 구현하려는 관치(官治)라고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곽 위원장은 몇 가지 사실도 왜곡 또는 간과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대에 대비를 못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연기금의 견제로 창조경영을 했나? 오너가 없고 사외이사가 강한 ‘좋은 지배구조’를 가진 제너럴모터스(GM)는 파산 직전에 몰리고, 오너가 거의 전권을 가진 현대자동차는 승승장구한 사실은 또 어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대기업들의 활약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적 오너 경영이 빠른 의사결정과 위험을 무릅쓴 선투자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칭송받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줄 잇는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대기업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대기업의 관료주의가 전체 기업 생태계의 활력을 줄이는 잘못된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능력도 없는데 창업자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갖거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 상속을 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집권 후반기 정권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고쳐 대기업 혁신의 도구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면 누가 순수하게 여길까? 기업을 쥐어짜도 물가가 안 내려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일자리가 안 늘어난다면 정책 수단과 과정이 맞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미 중소기업과 줄줄이 동반성장협약을 맺고, 적자를 보면서 기름값을 내리는 등 날마다 정부에 ‘충성서약’을 하는 대기업들을 마치 모든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몰아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