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최영진 코트디부아르 유엔 대표, 정말 벙커에만 있었나

  • Array
  • 입력 2011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치영 뉴욕특파원
신치영 뉴욕특파원
지난달 말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내전이 한창일 때 많은 한국인의 시선은 최영진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에게 모아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이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었을 때 차관을 지낸 그를 2007년 11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로 임명했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대선 결과에 불복한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과 당선자 사이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민간인 학살 소식 등이 긴박하게 전해지는 상황에서 현지의 유엔 대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한국 언론들로 하여금 유엔 평화유지군의 움직임에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기자는 내전이 격화된 뒤 최 대표와 접촉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휴대전화로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돼 e메일로 기자의 전화번호까지 알려줬다.

하지만 최 대표로부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e메일을 받았는지, 메시지를 받았는지조차 언급이 없었다. 기자 이외에도 여러 한국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언론 어느 곳에도 최 대표의 육성은 실리지 않았다. 그 사이 영국 BBC, 알자지라 등 외국 언론에는 최 대표의 인터뷰가 간간이 실렸다.

코트디부아르 내전 사태는 11일 일단락됐다. 유엔 안보리에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17일 뉴욕에 온 최 대표는 22일 몇몇 뉴욕특파원의 면담 요청에 응해 자신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내가 맡은 임무는 많았지만 그중에서 실패해도 되는 건 없었다. 모두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참혹한 민간인 살상이 예상됐다. 내가 죽더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영웅담이 이어졌다.

하지만 왜 그런 긴박한 상황, 영웅적인 활동을 한국 언론에는 당시엔 얘기해줄 수 없었을까. 최 대표는 “지하 벙커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e메일도 확인할 수 없었고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1일 내전이 종식된 후에는 벙커를 나왔을 테고 e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벙커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은 지상에 올라와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는 설명을 감안하면 한국 언론에 대한 그의 무응답은 이해하기 힘들다.

최 대표는 외교부 재직 시절 “(기자의) 정부 사무실 출입이나 기자 접촉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개인적 언론관은 그것대로 존중하고 싶다. 하지만 140여 명에 달하는 한국 교민의 안전, 그리고 한국인 특별대표의 활약 및 안부를 궁금해했던 고국 언론의 관심을 묵살하는 것이 그가 주장해 왔던 올바른 언론 대응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신치영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