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등록금 갈등, 이젠 정부가 나설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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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최근 KAIST 사태에 묻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대학가의 또 다른 이슈는 등록금 내홍(內訌)이다. 올해도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령하고, 수업을 거부하며 거리로 뛰쳐나가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예식장에까지 등록금 동결 피켓이 등장하는가 하면, 심지어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는 안타까운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대개는 봄마다 찾아오는 ‘개나리 투쟁’이라고 간과하기 일쑤지만 대학생의 60%가 등록금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충격적인 조사도 있으니, 한가롭게 개나리 타령만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영재집단인 KAIST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고 캠퍼스의 등록금 내홍이 대학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등록금 부담이 고통스럽다는 학생들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대학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등록금 의존율이 65%가 넘는 한국 대학의 고뇌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사회여론도 결코 대학에 우호적이지 않다. 국회는 기상천외한 등록금 상한제까지 제정했고, 언론마다 비싼 등록금과 미흡한 대학 경쟁력을 질타하고 있다. 등록금 논란이 국민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학은 곳곳에서 공공의 적으로 몰매를 맞고 있는 셈이다.

‘개나리 투쟁’ 사라져야 대학 발전

등록금 상한제가 처음 적용된 올해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상한제에 따른다면 5.1%까지도 인상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껏 2% 내외의 인상안을 놓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상한제가 문제가 아니라 등록금 인상 자체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언제까지 등록금 논란을 캠퍼스의 내분으로 방치할 것인가.

먼저 대학의 궁극적인 사명을 생각해 보자. 대학은 당연히 미래를 이끌 전문 인력을 양성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대학의 경쟁력이 곧 선진화의 관건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고, 그런 대학에서 누구나 등록금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세계은행은 최근 연구에서 대학 경쟁력의 핵심요소를 우수한 인력과 재정여건, 정부의 규제환경 등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재정은 풍부할수록 좋고, 규제를 풀어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그 많은 대학 중 KAIST와 포스텍만이 세계수준으로 평가받는 것도 결코 재정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만 한다.

선진국들은 재정을 세 가지 형태로 조달하고 있다. 하버드대처럼 3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체 기금을 가진 명문도 있지만 대부분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다양한 학자금 보조제도가 대학교육을 뒷받침한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세 가지 모두 열악하기만 하다. 그 결과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세계적인 대학 하나 없고, 우수한 인재는 모두 외국대학에 빼앗기며, 등록금에 목숨을 거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참담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서울보다 작은 싱가포르나 홍콩보다도 훨씬 더 열악하다. 한국의 대학들은 개나리가 필 때마다 애꿎은 학생들과 등록금 내홍을 겪으며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피하려면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의 선택은 오히려 단순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든가 아니면 경직적인 규제를 풀어 자율적으로 재정을 확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에 대한 학비 지원과 학자금 융자제도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쥐꼬리 지원에 획일 규제 지나쳐

OECD 수준의 국격(國格)을 홍보용으로만 들먹이지 말고, 대학의 실질적인 지원도 그 기준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 중국 같은 개도국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대학에 투자하여 세계 명문을 육성하고 있는데, 우리는 적어도 GDP의 1%라도 투자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4대강 사업이나 신공항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보다 대학의 육성이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교육과 의료 등 소프트 인프라가 주도하는 지식경제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등록금 내홍을 방관하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대학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가당치도 않은 반값 등록금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율화를 통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원은 미흡한 채 획일적인 규제만 지속한다면 어디에서 한국 대학의 미래를 찾을 수 있겠는가. 나라가 선진화될수록 대학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교육기회도 확대되어야 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어느 것 한 가지도 기대하기 힘들다.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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