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드레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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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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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는 단순한 복장 규정이 아니라 성별, 재산, 종교, 직업, 정치적 및 성적 취향을 나타내는 사회적 메시지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로원 의원들만 티레산 자주색 물감으로 염색한 옷을 입었다. 하와이에서는 추장만이 깃털과 고래이빨로 장식한 겉옷을 입는다. 우리나라에서 남색 치마와 하늘색 바탕에 끝동이 남색인 저고리는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로 딸만 둔 여성은 입을 수 없었다.

▷좁은 의미의 드레스 코드는 특정한 모임이나 장소에서 요구하는 복장 규정이다. 유럽 대성당들은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의 관광객은 출입을 금한다. 성속(聖俗)분리 원칙에 따라 터키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히잡을 쓰는 것은 불법이다. 뉴욕 런던의 전통 있는 클럽들은 야구 모자를 쓰거나 후드가 달린 옷,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영국의 어떤 골프장에서는 상의는 반드시 빨간색으로 입도록 한다. 엄격한 드레스 코드는 그 모임의 품격과 전통을 상징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 9일자에서 최근 경기침체와 실용주의 흐름에 따라 격식을 요구하는 드레스 코드가 쇠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직원들에게 정장과 타이를 갖춰 입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방문객에게도 청바지 스니커즈 미니스커트 민소매 차림을 허용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분위기에 맞추어 옷을 잘 골라 입는 비언어적 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이 콘텐츠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청바지와 검은색 터틀넥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 형식에 새 장을 열었다.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손님에게 “드레스 코드상 곤란하다”며 출입을 제지했다.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인 이혜순 씨가 이런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누리꾼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자 호텔 임직원들이 이튿날 사과했다. 한복의 특성상 치맛단이 발에 밟히고 소매 끝에 음식이 닿는 일이 많아 그런 드레스 코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호텔 측 설명이다. 이름부터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간판급 호텔에서 ‘우리 옷’을 배척한 드레스 코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특급호텔에서 한식당이 사라지는 마당이라 한복에 대한 홀대가 아쉽게 느껴진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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