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병묵]부패방지법 개정안, 사학을 말살 하려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확정하여 법사위원회에 넘겼다. 개정안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는 곳은 제2조 제1호 바목과 제3호 다목이다. 내용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또는 보조금을 지원받는 사립학교와 그 학교법인을 ‘공공기관’에, 그 구성원을 ‘공직자’에 포함시켜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6년에도 부패방지법의 개정을 시도하다가 사립학교 및 학교법인은 공공기관으로 볼 수 없으며 사학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해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여론과 반대에 부닥쳐 좌절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시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개방형 이사제와 교수, 직원, 학생 대표자 등으로 구성되는 대학평의원회를 교무회의보다도 상위의 최고 법적 기구로 설치하는 등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한 후 현재 사학은 이념적 갈등과 구성원 간의 불화 속에서 파행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는 목소리는 외면한 채 사립학교 및 학교법인을 공공기관에 포함시켜 규제하겠다는 또 다른 발상은 아예 사학을 고사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 교직원을 공직자에 포함시키려면 기본적으로 그 자격과 임용, 교육훈련, 복무, 보수, 신분 보장 등에서 공무원과 똑같이 보장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공공 목적을 수행하는 민간의 방송, 은행, 병원, 복지기관, 정부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민간기구 등은 제외한 채 유독 사립학교와 학교법인만 공공기관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사립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주체인 학교법인은 사적 자치에 입각한 재단법인의 성격을 갖는 것이며 국가의 사립학교에 대한 감독과 통제는 사학의 자율성이라는 본질을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견해다(헌법재판소 1999년 3월 25일 헌마 130 참조).

국가가 사학에 대하여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학교법인의 사인적 성격을 부인하거나 국가가 사학의 운영에 대한 과잉 규제를 당연시 하는 것은 학교법인의 사유재산권과 교육의 자주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또한 사적기관과 기관 구성원을 공공기관과 공직자로 만드는 것은 사법인과 사적기관을 국가가 무상으로 탈취 또는 징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정안의 관계 조문은 헌법 제1조 제1항, 제8조 제4항 등의 자유민주주의 원리, 제10조 행복추구권 및 일반적 행동의 자유,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 제23조 재산권,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 원칙, 제119조 제1항의 자유시장경제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학은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왔으며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 국제경쟁력시대에 사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시된다. 이제는 국가가 사학을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육성과 지원을 해야 할 시점이다. 묵묵히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학에 대해 사후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적어도 사전 규제만큼은 풀어주는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사학이 발전해야 국가 미래도 밝다. 사학이 망하면 국가도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개정안에서 사립학교 및 학교법인을 공공기관에 포함시키는 조문만은 삭제하길 바란다.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