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민구]케임브리지에서 한국 대학개혁을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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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전자 관련 학술회의여서 우리나라 논문이 많이 발표됐다. 그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앞서가는 것도 많았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는 사회의 수요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삼성과 LG 등 기업들이 부상하면서 학계의 위상도 동반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원생들의 영어 발표 능력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보여준 자신감과 당당함은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했다.

케임브리지대에는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뛰어난 학생과 교수들이 몰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고 캠퍼스가 아름답다고 해서 인재들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대는 대학평가에서 항상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권위 있는 ‘더 타임스 평가’에서도 미국 하버드대와 수위를 다툰다.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의 이미지는 고색창연한 캠퍼스에서 문학 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문학만 강한 게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88명으로 전 세계 대학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543명 중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75명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다.

첨단연구와 학생 교육 함께 중시

왜 케임브리지대가 세계적인 대학이 됐는가. 학문적 수월성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개방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케임브리지대의 실질적 행정 책임자는 임기 7년의 부총장이다. 1996∼2003년에는 앨릭 브로어스 교수였다.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IBM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다 1984년에 이 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03∼2010년에는 앨리슨 리처드 교수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2002년까지 교편을 잡았던 여성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의 실질적인 수장의 면모를 보면서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방과 변화에 충격을 받았다.

케임브리지대는 첨단연구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세계적인 석학들도 강의와 별도로 평균 2명의 학생을 매주 2∼4시간씩 튜터링을 통해 개별지도를 한다. 지도학생들의 성적은 교수평가에도 반영될 수 있다. 학생 선발은 31개의 기숙사 대학(college)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학생들은 6개 분야로 입학한다. 대부분의 학과는 정원 개념이 없고 학생들이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자유스럽게 학과를 선택한다. 미국 대학들은 학과별로 선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명문대일수록 대학 전체로 전공 구별 없이 선발한다. 일본의 도쿄대도 단과대학 또는 계열별로 학생을 뽑고 3학년 진급 시 학과를 배정한다.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자유스럽게 전공을 선택하는 선진국을 볼 때마다 우리 대학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선진국에서는 대학 입시제도나 정책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대학 스스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문과 이과를 고등학교 때부터 구분하고 학과별로 학생을 선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전공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학과를 정하면 전공 적응에도 문제가 생기고 경직된 학과별 정원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력 수급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융합시대에 문과 이과의 구분을 없애고, 학생들의 적성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계열별이나 단과대학별, 나아가 대학 전체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입시과목 등 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혼란이 없고, 학생들의 만족도 등은 매우 높을 것이다.

대학 자율성과 다양성 존중해야

한국의 대학정책은 교육과 연구보다는 대학입시에 집중돼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해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발상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학은 잠재력과 창의력이 있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입시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누구나 더 나은 대학을 가겠다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정부 규제로 막을 수 없다. 우수학생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10년 만에 없어진다고 한다. 그동안의 막대한 혼란과 손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미국 영국 정부는 대학입시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안배보다는 선별적으로 집중적인 재정 지원을 한다. 우리 대학도 학생들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개방과 변화 및 경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세계적 대학이 되는 것은 영어강의를 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교수의 확보 및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그러면 전 세계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올 것이다.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mk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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