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의료사고의 신속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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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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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는 휘발유를 실은 LPG 차량이 병원으로 돌진해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이 병원에서 수술 도중 불가피하게 다리를 절단하게 된 환자가 병원에 불만을 품고 벌인 난동이었다. 지난해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서 당뇨병을 앓아온 50대 남자가 전립샘암 조직검사를 받은 뒤 패혈증 증세를 보여 사지(四肢)를 절단했다. 검사 결과 전립샘암이 아니었는데 조직검사로 사지를 절단하게 된 환자 가족은 의료사고라고 주장했다. 병원 측에선 교과서대로 처치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서 난동을 피워 합의금을 받거나 민사소송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이 병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의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병원은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2001년 585건이던 의료소송은 2009년 911건으로 8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환자 가족과 의료진 모두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의료관련 소송의 유일한 승자는 변호사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1988년 의료분쟁조정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후 의사단체와 시민단체의 대립으로 폐기와 재상정을 반복한 끝에 23년 만에 처리된 것이다. 신설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사고 피해자가 구제신청을 하면 전문의, 법조인,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의료사고 감정단이 조사를 벌인다. 이를 토대로 의료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해 양측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의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생명이 위험하거나 장애가 생긴 경우는 예외다. 불복할 경우 소송으로 가게 된다.

▷과실 입증을 환자가 하느냐, 의사가 하느냐가 중요한 쟁점이었으나 논란이 큰 ‘과실 입증 책임’ 규정을 빼버렸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가능했다. 양측 모두 아쉬운 대목이 있겠지만 제3의 기구가 사고 조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의료분쟁 조정 대상에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돼 있어 의료관광의 걸림돌 하나가 제거됐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이 법이 한국 의료문화를 선진화하고 해외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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