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하이 총영사관이 보여준 외교관 윤리 붕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근무했던 전직 영사 3명이 관련된 ‘상하이 스캔들’은 단순한 품위 손상이나 윤리 문제 차원을 넘어서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들은 정체불명의 중국 여성 덩모 씨와 부적절한 관계나 친분을 유지하며 갖가지 정보를 넘겨주고 비자 부정발급을 알선한 혐의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조사를 받았다.

외교통상부 법무부 지식경제부 소속 공무원인 이들은 상하이에 근무하면서 덩 씨를 알게 된 뒤 금지된 선을 넘나들며 교제를 했다. 덩 씨는 2001년 그와 결혼해 딸까지 낳은 한국인 남편조차 구체적인 신상을 모를 정도로 정체가 불분명했다. 덩 씨의 개인금고와 컴퓨터에는 대통령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비롯해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정치인 200여 명의 휴대전화 번호, 상하이 총영사관의 내부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외교 일선에 나선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국가 기강과 공직자 윤리를 이처럼 헌신짝 취급하며 일을 했다는 말인가.

상하이 총영사관과 교포 사회에는 ‘덩 씨의 전화 한 통이면 상하이 당서기 면담을 주선할 수 있고 탈북자와 국군포로를 국내에 송환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실제로 영사들이 상하이 시(市) 정부 관련 민원을 해결하거나 국내 중요 인사가 중국 정부 인사 및 상하이 시 고위층과 만나도록 주선하는 일에 덩 씨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덩 씨는 중국 공안과 관련이 있는 스파이이거나 정보를 사고파는 브로커일 수 있다. 우리 중국 외교가 이런 정체불명의 여성에게 신세를 져야만 겨우 일을 풀어갈 수 있는 수준인지 총체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영사들이 국가 기밀사항일 수도 있는 정보나 자료를 제공했다면 공직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정보누출 불감증이 상하이 총영사관에만 국한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외교관들이 전임자로부터 소개받은 현지 인사들과 적당히 지내는 무사안일 풍토도 이 사건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해외공관의 총책임자인 대사와 총영사가 정부 부처에서 나온 주재관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 사건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과 부처 감사관실에 맡겨놓고 품위손상 여부나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불거진 사건을 덮고 넘어가려 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번 스캔들은 해외공관 근무자들의 기강과 윤리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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