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 수사 너무 건성건성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2년 전 발생한 배우 장자연 씨 자살사건의 재수사가 불가피해졌다. SBS는 “장 씨가 숨지기 전 지인에게 남긴 편지 50통을 입수했는데 ‘31명에게 100번 이상 성 접대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장 씨는 편지에 모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2007년 이후 연예계와 대기업, 언론계 인사 등에게 성 상납을 강요당했다고 썼다. 장 씨는 소파와 부엌, 방과 샤워실, 침대를 갖춘 기획사의 ‘접견실’에서도 접대를 했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장 씨가 심지어 어머니 제삿날에도 접대를 한 뒤 울었다는 목격자 진술을 경찰이 묵살했다고 SBS는 전했다.

장 씨의 한 지인은 2009년 수사 때 편지 내용을 제보했으나 경찰은 편지를 확보해 조사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날조된 편지로 결론지었다. 당시 남성 10여 명의 실명이 거론됐지만 검찰은 12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은 SBS가 입수한 편지를 확보해 장 씨의 자필(自筆)인지를 먼저 가려야 한다. 자필로 확인된다면 장 씨의 자살 동기에 대한 의혹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거듭되는 성 접대 강요에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장 씨는 편지에서 성 접대를 강요한 사람들을 ‘악마’로 표현했다. 기획사와 유흥업소 관계자, 지인 등에 대한 수사에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책임을 물어 장 씨의 한(恨)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2009년 당시 철저한 수사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해결 못할 사건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본다.

경찰은 2일 발생한 우편집배원 사망사건 수사에서도 안이했다. 집배원 김모 씨가 배달 중에 아파트 계단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직후 경찰은 단순 실족사에 무게를 뒀다. 누군가와 싸우거나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일부 신문은 ‘격무에 시달리던 김 씨가 계단을 헛디뎌 숨졌다’고 보도했다.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에 섣불리 실족사로 예단(豫斷)한 경찰의 잘못이 크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둔기에 머리를 맞아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 결과를 통보한 뒤에야 수사 방향을 틀었다. 사건 발생 나흘 뒤에야 사건 현장인 아파트의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집배원을 2시간 이상 미행한 남자가 있었음도 확인했다. 초동수사를 건성건성 하다 범인과 증거물을 놓친 경찰은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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