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공종식]내가 만난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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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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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식 정치부 차장
공종식 정치부 차장
‘탈랄 알하지.’

기자가 뉴욕 특파원으로 뉴욕의 유엔본부를 취재할 때 알고 지내던 이라크 출신 기자의 이름이다. 그는 아랍권에서 영향력이 큰 알아라비야TV의 유엔 특파원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아프리카 출장을 동행 취재했던 인연으로 친해진 그는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아랍어로 ‘아침이슬’을 뜻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한국에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다고 전해줬더니,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당시 유엔의 큰 현안이었던 이라크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그는 “한국의 발전이 부럽다. 법의 발상지인 이라크가 무법천지라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현재의 이라크)의 함무라비 왕이 기원전 1750년경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뒤 제정했다.

유엔 출입기자 중에는 이슬람권 기자가 유독 많았다. 이들은 또 취재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이슬람권에선 분쟁이 끊이지 않아 국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조정 역할을 맡는 유엔발 뉴스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기자는 유엔을 출입할 때 이슬람권 기자들과 친하게 지낸 편이었다. 특히 이집트 기자들과는 취재부스를 같이 쓰면서 더욱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생각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대체로 정이 많았다. 가끔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기도 하는 등 정서가 서양과는 달랐다. 한국 드라마가 이슬람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가족 간의 정을 다루는 등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출신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이슬람권 기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던 점은 ‘답답함’과 ‘콤플렉스’였다. ‘찬란했던 과거’와 ‘초라한 현재’의 괴리에 힘들어했다. 사실 아랍은 중세 유럽이 어둠에 싸여 있을 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700년경까지만 해도 세계경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로 유럽(9%)보다 높았다. 지금은 그 비중이 2%로 유럽(22%)의 10분의 1에 그친다. 이슬람 국가들은 독재국가, 신정(神政)국가, 왕정(王政)국가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가 터키를 포함해 극소수에 그친다. 산업 측면에서도 석유 외에는 뾰족한 게 없다. 자동차와 TV를 포함한 주요 공산품 중에서 원산지가 이슬람 국가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이슬람권이 그만큼 산업화와 근대화에서 뒤처졌다는 방증이다.

한때 높은 과학기술과 문화수준을 자랑했던 이슬람권이 근대에 들어와 뒤처진 것과 관련해 지나친 종교 중시, 이자를 금지하는 등 자본주의와 맞지 않는 꾸란, 근대화와 개방을 거부하는 문화적 특성,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꼽힌다. 생각해보자. 남녀가 손을 잡고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하면 종교경찰이 체포하는 사회에서 참신한 상상력과 혁신이 담긴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동안 변화를 거부해왔던 이슬람권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변화의 불꽃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향했다. 종착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 개방을 통해 부상했듯이 막 깨어나고 있는 아랍권이 세계사에 큰 족적을 다시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공종식 정치부 차장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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