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준영]“조정, 이게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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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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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정준영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조정이란 무엇일까. 재판과 대비하면 조정은 분쟁 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창조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분쟁 해결 주체는 분쟁 당사자들이다. 조정위원의 역할은 분쟁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분쟁해결제도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시민사회의 표징이다.

대화로 해결할 일도 툭하면 소송

조정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조기조정(early mediation)제도를 시범 실시했다. 재판부가 본격적인 재판 전에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면 1∼2개월 이내에 조정위원 주도로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자율적 분쟁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물론 조정에 부적합한 사건은 제외된다. 조기조정에 회부된 사건 중에는 1∼2주 내에 신속하게 해결된 사례도 많았다. 조기조정 시범 실시에는 서울법원 조정센터의 상임 조정위원과 법원의 비상임 조정위원뿐 아니라 사법 사상 최초로 외부 분쟁조정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중재센터도 동참했다.

어느 날 대한상사중재원 조정위원으로부터 당시 조정담당 판사였던 필자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2시 조정을 시작해서 5시 반에 끝났고 합의서에 서명까지 마쳤습니다. 처음 한 시간은 상호 간에 거칠게 감정을 표출하는 시간이었고, 다음 한 시간은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 그 다음 한 시간은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전화를 받고 조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조기조정 과정에서 분쟁이 해결된 경우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80%를 넘는다. 분쟁 해결 비율도 30∼40%에 이르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분쟁 당사자가 자율적 분쟁해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증거다. 왜 그럴까.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주장은 잘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대화법은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대화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을 거쳐 체득해야 하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또래조정(peer mediation)’이다. 또래조정은 초중고 학교생활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학생들 가운데서 선발한 또래조정위원 주도로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제도다. 물론 선생님이나 학부모의 개입도 없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활발하게 시행 중이고, 유럽에서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갈등 상황에 대한 인식능력 향상,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갈등해결능력과 리더십 향상이라는 교육 효과도 부수적으로 따른다고 한다. 필자가 한 초등학교에 법관 멘터링을 나갔을 때 교장 선생님께 또래조정을 제안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는 필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또래조정 제도를 시행했는데 그 후 학교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고 한다. 10년, 20년 후 또래조정위원으로 봉사한 학생들과 또래조정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한 학생들이 사회인이 될 때 우리 사회의 갈등해결문화는 사뭇 달라져 있지 않을까.

어릴적부터 갈등해결 훈련을

조정은 법원에 접수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 그 이상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자율적 분쟁해결제도라는 조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때, 조정은 민사분쟁뿐 아니라 이웃 간 분쟁, 직장 내 갈등, 학생들 사이의 다툼도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분쟁해결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게 될 때,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또래조정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성숙한 시민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 질문에 답해보자. “조정, 이게 최선입니까?” “네, 확실합니다.”

정준영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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