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과목 쪼개기와 과목 포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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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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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 이 마침표보다 훨씬 더 작은, 아니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가 무한대인 특이점’의 상태에서 137억 년 전에 대폭발이 일어나 지금의 우주를 형성했다는 빅뱅(Big Bang) 이론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

빅뱅 이론은 우주, 자연, 생명 등 과학 분야에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단어 자체도 ‘금융 빅뱅’ ‘미디어 빅뱅’ ‘모바일 빅뱅’ 등 ‘폭발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뜻하는 일상용어로 널리 확산됐다. ‘거짓말’로 유명한 인기 그룹 ‘빅뱅’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케플러의 법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시는지? 궤도의 법칙, 면적의 법칙, 조화의 법칙으로 나뉘는 케플러의 1, 2, 3 세 법칙은 행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우주가 얼마나 질서 있게 움직이는지 새삼 감탄하게 만드는, 정말 아름다운 법칙이다.

이 법칙은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의 근거를 제시하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수학적인 기초를 제공했다. 서울대도 2011학년도 논술고사에서 인문·자연 계열 공통으로 ‘케플러 사례를 통한 과학적 탐구방법’을 묻는 문제를 출제할 정도로 중요한 법칙이다.

우리 교과서는 빅뱅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뉜 과학시간에 어느 과목에서 다룰지 서로 기피하기 때문이다. 케플러의 법칙은 서로 가르치려 든다. 물리 교사와 지구과학 교사가 빅뱅 이론은 서로 떼밀고, 케플러의 법칙은 서로 당기는 형국이다.

‘빅뱅’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작은 ‘소폭발(小爆發)’이 ‘폭폭’ 일어나는 듯 뭔가 아는 듯한데, ‘케플러의 법칙’은 언제 배웠는지 머릿속이 ‘깜깜한 우주’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빅뱅은 그래도 알듯 말듯한데,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쳤다는 케플러의 법칙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케플러의 법칙은 약간의 수학 지식만 있으면 쉽게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빅뱅으로 시작하는 우주와 생명의 탄생을 가르치려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넘나들며 우주론, 양자역학, 천체물리, 상대성이론에서 현기증 나는 최신 지식을 섭렵하고 전체적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교사가 모르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는 현실과 교사가 아는 것만 가르치면 발전이 없다는 미래 사이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교사들은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자기 과목에 융합시키기 위해 얼마나 공부하고 있는가?

그동안 교과목은 교육학계의 주도권 다툼에 따라 필수와 선택으로 나뉘었다. 교과서는 학생보다 교사를 중심으로 편찬됐다. ‘과목 쪼개기’를 통해 자기 과목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한 속내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을 물·화·생·지로 쪼개 빅뱅은 떼밀고 케플러의 법칙은 당기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회 과목에서 국사가 필수인지 선택인지를 놓고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과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융합형 과학교과서’를 만들어 올해부터 적용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물·화·생·지를 넘나들며 빅뱅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통합·융합·통섭의 시대에 과학이 제일 먼저 ‘과목 쪼개기’를 포기하고 ‘과목 포개기’를 선언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융합형 과학교과서를 만들어 놓고도 교육학계의 눈치를 보며 애써 침묵하는 교과부에 묻는다. “융합형 사회 교과서는 언제 만들 겁니까?”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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