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MB 언어, 무엇이 기억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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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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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이명박(MB) 대통령은 1일 방송좌담에서 설 연휴 계획에 대해 “내일 하루 박물관에 가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구체적 일정은 경호 때문에 극비 사항이다. 언론은 알고도 일정이 끝날 때까지 보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다른 사람이 말했거나 언론이 사전에 보도했다면 일정이 취소되거나 변경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말해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청와대와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MB의 화법은 특이하다. 어떤 질문이든 주저 없이 답하고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다. 답변은 알아듣기 쉽고 메시지가 분명하다.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끌고 가는 것도 남다른 강점이다. 서울시장일 때 잠재적 대선주자이던 그를 두 번 인터뷰하면서 이런 화법을 실감한 적이 있다. 행정중심도시에 대해 묻자 그는 반대한다고 전제하고 “공무원 1만2000명을 옮기려면 빌딩 2개만 있으면 충분한데 2200만 평의 땅을 살 필요가 뭐 있나”라고 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선 “종업원 4∼10명을 고용하는 전국의 소상공인 280만 명에게 1명씩만 더 고용하게 지원하면 일자리가 200만 개 이상 늘어난다”는 해법을 냈다. 당시 다른 어떤 잠재주자들보다도 답변이 시원시원했고 명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화법은 당장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수를 낳고 책잡힐 소지가 크다. 지나친 확신과 단순함 때문이다. 대선주자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면, 그리고 신문이 아니라 생중계되는 방송 회견이라면 그럴 위험성은 더 높다. 1일 방송좌담에서도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보좌진이 잘못 알려줬는지, 아니면 본인이 평소 잘못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다. ‘MB정부 출범 후 야당이 위원장인 국회 상임위에서는 한 번도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통과된 적이 없다’거나 ‘(장관) 인사청문회는 지난 정권 때 법이 생겼지만 우리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인사청문 보고서는 야당이 위원장인 상임위에서 세 번 통과된 적이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도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십수 명을 대상으로 했고, 매번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내가 국회의원을 두 번 했는데 12월 31일이 돼도 여야 합의로 예산이 통과된 것을 못 봤다”고 했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MB가 국회의원일 때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여야 합의로 예산이 통과된 적이 적지 않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권 조성과 관련해 “공약집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7년 대선 공약집에 충청권 대신에 중부권이라고 쓰여 있지만 ‘충청권 조성 약속’을 부인하는 근거로는 궁색하다. 한나라당의 충청지역 정책공약집에는 더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 설사 공약집에 없다 하더라도 말로 한 공약도 공약이다. 괜한 말로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이 대통령도 이제 임기 4년차다. 군대로 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에 해당한다. 그런데 임기를 시작한 지 36개월째 되는 지금까지,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는 되지만 ‘대한민국 지도자 MB’를 각인시킬 만큼 국민의 가슴을 적시거나 파고든 ‘MB 언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58회 라디오 방송 연설을 한 것을 비롯해 국민을 향해 많은 말을 했지만 여전히 국민 사이에서 ‘소통 부족’ 얘기가 나오는 현실도 안타깝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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