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 현실성이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당정청 수뇌부 회동에서 “개헌 논의는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권력구조와 기후변화, 여성, 남북관계, 사법부 관련 조항을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광범위하게 검토하자고 제의했다. 작년 광복절 경축사 이후 이 대통령의 개헌 관련 발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와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논의하고 금년 안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해 설 연휴 이후인 2월 8∼10일 예정된 한나라당의 의원총회가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의 빈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 공포한 평화헌법은 전수(專守)방위가 핵심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반면 프랑스 5공화국 헌법은 1958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24차례나 손질됐다.

이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에선 일정 부분 공감이 간다. 1987년 대통령 5년 단임제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의 욕구를 담아냈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5년 단임제의 한계나 선거 시기의 불일치로 인한 국력 소모는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을 꺼냈을 때 한나라당을 포함한 6개 정당 원내대표는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개헌 논의를 하겠다’고 약속한 적도 있다. 원 포인트 개헌도 성사가 안 됐는데 이 대통령이 제의한 전방위적 개헌이 임기 말에 가능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경성(硬性)헌법을 채택한 우리나라는 개헌 절차가 까다롭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는 의결을 거친 뒤 국민투표를 실시해 유권자 과반 투표와 투표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여권 주류 진영은 “물밑 개헌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동안 개헌 논의가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아일보의 올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이 대통령의 집권 4년차인 올해 역점을 둬야 할 분야를 대북관계, 경제성장, 빈부격차 해소 순으로 꼽았고 개헌 분야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주 동아일보가 한나라당 전체 의원 171명을 상대로 실시한 개헌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120명 중 92%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78%가 “18대 국회에선 개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이 아니라 후반기에 개헌 논의를 꺼내는 바람에 개헌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고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개헌 카드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여권 내 틈새 벌리기에 나섰다. 대통령 임기 말의 개헌 논의가 평지풍파, 국론분열, 국력소모의 진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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