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은 ‘10개월짜리 문화부 장관’ 임명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정 후보자가 내년 19대 총선에 출마할지를 집요하게 따졌다. “총선에 출마한다면 10개월짜리 장관에 불과하므로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비판에 정 후보자는 “내 의지대로 될 수 없는 부분”이라거나 “임명되면 장관으로서 열심히 하는 게 제 임무”라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총선 출마의 뜻이 강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11일 치러지는 총선에 공직자가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 사퇴’ 규정에 따라 늦어도 내년 1월 12일까지는 공직을 사퇴해야 한다. 정 후보자가 출마한다면 길어야 1년짜리, 선거 운동을 위해 좀 더 일찍 그만둔다면 10개월짜리 장관이 될 수도 있다. 재임 기간의 길고 짧음을 떠나 총선에 출마하려 한다면 마음이 콩밭(선거 판)에 가 있어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 후보자는 야당 시절이던 2006년 3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자로 나서 “장관 한번 해보겠다는 명예욕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쏘아붙였다. 바로 그 질문을 정 후보자에게 돌려주고 싶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문화부 장관을) 10년간 준비해왔다”고 말했지만 10년 준비해 고작 10개월짜리 장관을 하겠다는 건가. 노무현 정부 때 정세균 정동영 천정배 유시민 씨는 11개월∼1년 5개월 동안 장관을 지내 장관직을 ‘경력 쌓기’ 용도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장관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길어진 편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이 대통령과 재임 기간이 같다. 정 후보자가 현 정부에서 개선된 장관직의 안정성을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업무 성과 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화부 장관은 박지원 전 장관”이라고 대답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여 년 사이 ‘가장 힘센 문화부 장관’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가장 인상 깊은 문화부 장관이었다는 견해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어제 본보 1면에 실렸던 정 후보자와 박 원내대표의 악수하는 사진을 보면 ‘장관을 하고 싶다고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 후보자가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이자 박 원내대표의 얼굴에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청문회 통과를 위해 아무리 야당의 협조가 절실해도 그런 저자세를 국민이 어떻게 볼지 생각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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