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오명철]2010년, 세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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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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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보고, 듣고, 겪은 세 남자의 가슴 짠한 이야기다. 힘든 한 해를 보낸 많은 이에게 이들의 사연을 전해주며 위안을 나누고 싶다.

一. 평범한 대학을 나온 L 씨는 남보다 늦은 50대 중반에 대기업 임원이 됐다. 그가 대학 졸업 당시 취업을 위해 수백 장의 이력서를 쓰고 졸업증명서를 떼어 수많은 회사에 원서를 넣은 것은 동기생들 간에 유명한 일화다. 작은 회사를 몇 군데 거쳐 그는 30대 중반 대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채용됐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20년 만에 임원이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힘들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특히 직속 상사는 노골적으로 그를 미워한다. 인내심이 대단한 그도 종종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난여름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귀가한 그는 아내에게 “내가 혹시 갑자기 죽게 되면 그 사람 조문은 절대로 받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남편이 얼마나 힘든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던 아내는 순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후회했다.

얼마 뒤 고교 ‘절친’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그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결혼 초기 물이나 초코파이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식권을 팔아 첫딸의 분유를 사곤 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30년 동안 그런 사실을 몰랐던 친구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냥 술만 들이켰다.

二. 언론사 논설위원 P는 지난여름 고교생 장남을 가슴에 묻었다. 북한산에서의 실족사였다. 그는 직속 상사에게만 알리고 부고도 내지 않은 채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49재를 마친 뒤 재를 지내준 비구니 스님이 말했다. “내 꿈에 웬 소년이 나타나 자기 얘기를 하면서 좋은 데 갔다고 했어.” 놀랍게도 ‘꿈속의 소년’이 스님에게 한 말은 죽은 아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소년은 P의 아내의 꿈에도 나타났다. “엄마, 나 이 세상에 다시 올 거야.”

일찌감치 가족계획을 단행한 P는 다시 아이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45세 남편과 43세 부인은 아들이 “다시 온다”고 한 약속을 믿고 싶어 한다. 한 사석에서 그가 저간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내생(來生)이 아닌 현세(現世)에서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참석자들은 그의 아들이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오게 될 것을 모두 기원했다. 三. 마지막은 쉰다섯 나 자신의 ‘후일담’이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만큼이나 힘든 얘기다. 올봄 ‘사상의 은사’였던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후 4, 5개월 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집과 산에 칩거하며 외부와의 소통을 일절 끊었다. 한 번 수렁에 빠지니, 직업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쓰나미처럼 덮쳐 왔다.

자살에 대한 유혹과 구체적 방식도 여러 번 고민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죽어서는 안 될 이유’들이 꿈틀거렸다. 홀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고,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회사와 수많은 벗을 실망시킬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든 결혼식장에 딸을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 등이었다.

희수(喜壽·77세) 노모에게 “아들 하나 없는 셈 치세요”라고 말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석 달여 전부터 서서히 병세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기적처럼 직장에서 연말을 맞고 있다. 가족과 벗들의 도움이 컸고, 좋은 의사들을 만났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폴 발레리)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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