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내영]당당한 大韓民國, 초라한 大韓國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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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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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동아시아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국가정체성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의 국민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느끼고 대한민국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가진다. 한민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응답이 62.3%로 2005년 조사의 52.9%보다 크게 증가했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응답은 3.0%에 불과했다. 또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가 2005년보다 경제적 성취도(24.7% 증가), 한국 민주주의 성숙도(7.5% 증가), 국제적 정치 위상(19% 증가), 사회보장 수준(19.7% 증가) 등 여러 방면에서 늘어났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높아진 반면에 다수의 한국 국민은 자신의 삶, 특히 경제상황과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고 조사됐다. 우선 자신의 가정경제 상황이 5년 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17.6%에 불과하고, 비슷하거나(41.6%) 나빠졌다는 응답(40.4%)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결과는 한국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31.3%에 불과하고, 3분의 2 이상의 응답자가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태도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 높아졌지만

이렇게 다수의 한국인이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경제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고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한국인의 비관적 태도는 한국사회의 여러 차원의 구조적 변화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듯이 보인다. 먼저 경제적 차원에서는 경제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경제회복의 수혜가 수출 부문이나 대기업에 한정되고, 중소기업이나 서민의 경제상황은 악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직업의 불안정성이 커진 점도 경제상황과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만든 이유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평균수명이 늘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지만 연금 등 복지제도가 미비하고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둘째로 국민이 정부와 지도층에 가지는 높은 불신이 국민의 불안과 비관적 태도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앞에서 소개한 국가정체성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이 정부와 지도층에 높은 불신을 가졌다.

한국의 지도층이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 오직 17%만이 그렇다고 답하고 83%는 아니라고 답하여 지도층에 대한 높은 불신을 보였다. 또한 정부가 소수 특정집단의 이익보다는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하는가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응답(36.2%)보다는 아니라는 응답(63.8%)이 많았다. 현 정부가 공정사회 건설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고 각종 서민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다수 국민이 냉소적 태도를 보인 모습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모범적인 국가로 인정받으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정작 다수의 한국 국민이 자신의 살림살이는 나아진 점이 없으며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며 무엇을 위한 민주화였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1세기 한국의 시대적 과제인 선진화는 국력 신장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때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국민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비관론을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위축된 국민의 태도는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경제 양극화, 높은 실업률, 복지제도 미비, 지도층에 대한 불신 등 앞에서 말한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회복하는 일이 관건이다.

경제-미래 불안 녹일 리더십 절실

요즘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국가의 체면이나 눈에 보이는 국익보다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보듬는 정치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드라마이기에 현실에는 없는 일이라고, 현실에 있다 하더라도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국민을 대하는 진정성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새해에는 위축되고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감싸 안는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을 보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당당해진 대한민국의 위상만큼이나 대한국민 개개인도 자신의 삶과 미래에 자신감과 낙관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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