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말로만 대응 日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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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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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그렇지만, 국가도 세 부류다.

말만 앞서는 나라, 행동이 앞서는 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나라….

언행이 일치하는 나라의 대표는 미국이다. 1962년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소련의 기도를 무산시킨 ‘쿠바사태’부터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전쟁까지 미국 대통령의 말은 곧 행동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가 내심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한다.

이스라엘은 말보다 행동 앞서

행동이 앞서는 나라의 대표 선수는 이스라엘. 자국에 위협이 되는 시설은 말없이 날아가 폭격해 버린다. 2007년 9월에는 시리아가 비밀리에 건설하던 원자로 시설을 폭격했다. 말보다 주먹부터 날리는 스타일은 종종 비난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섬뜩한 공포, 그 자체다.

말만 앞서는 나라의 대표 선수는 북한이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부터 ‘핵전쟁’ 운운 등 북한이 가한, 그 수많은 위협이 행동으로 옮겨졌다면 한반도는 물론이고 미국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북한이 달라졌다. 천안함 사건 때는 이스라엘 식으로 말없이 기습하더니, 연평도 포격 때는 미국 식으로 경고하고 타격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22일 남측의 호국훈련을 겨냥해 “참혹한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연평도를 포격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 말만 앞세우던 북한이 행동하니까 도리어 우리가 말만 앞서는 나라가 돼 버렸다.

8월 9일 북한은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해상에 해안포 130여 발을 쐈다. 합동참모본부는 “포탄이 모두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10여 발이 NLL 남쪽 1∼2km 해상에 떨어졌다”고 말을 바꿨다. 이 때문에 북한의 포탄이 사실상의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힐 경우 파장이 두려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일 탄착점을 몰라서 그랬다면 더 한심한 ‘당나라 군대’다.

8월 24일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의 NLL 이남 포 사격 시 2, 3배 화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북측의 NLL 이남 포격에 응사하지 못한 채 보름 후에야 ‘말 펀치’만 날린 것. 연평도 포격의 예행연습이나 다름없었던 그 해안포 사격 때 북한은 느꼈을 것이다. 찌르면 썩은 호박처럼 쑥 들어가는 남측의 물컹한 속살을. 북한이 거리낌 없이 연평도를 유린한 데는 이런 ‘말로만 대응’이 한몫했을 것이다.

입만 나불거리면 가소롭게 들려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국방장관의 ‘2, 3배 화력 대응’ 운운도 결국 말뿐이었다. 북측으로부터 170발을 맞고도 절반도 안 되는 80발밖에 쏘지 못했기 때문이다.

11월 30일 군은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의 핑계로 삼은 연평부대 사격훈련을 한 차례 더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훈련을 미국이 반대하자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

12월 6일 군은 동·서·남해에서 해상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여기서도 당초 예정됐던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 사격훈련은 제외됐다.

12월 13일 군은 전국 해상 27곳에서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또 서해 5도 해역은 제외됐다. 서해 5도 제외 이유에 대해 군은 “날씨가 나빠서” “계획에 없어서”라고 설명하지만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입만 나불거리는 사람의 말은 가소롭게 들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행동하기가 그렇게 두려운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대공황을 맞아 두려움에 떠는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하나는 두려움 그 자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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