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범]리얼리티 프로에 ‘사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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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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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이 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하는 걸 비유한 표현이다. 이 속담에서 유래해 TV에서 ‘봉창 김선생’으로 불리던 연기자가 있었다. 최근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맞은 혐의로 구속된 연기자 김성민이다.

김성민은 KBS 2TV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 선데이’의 코너 ‘남자의 자격’에 고정출연하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봉창 김선생’은 그가 방송에서 종종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나 말로 선배인 방송인 이경규에게 면박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얻은 애칭이다.

엉뚱하고 예기치 못한 돌출행동을 일삼지만, 매사 열정적이고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는, 미워할 수 없는 ‘개구쟁이’ 캐릭터.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좋아했다.

그래서 김성민의 구속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는 연예계와 마약의 질긴 ‘악연’을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감을 지적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그동안 방송에서 보여준 순수하고 열정적인, 늘 밝은 모습은 다 거짓이었나”라는 온라인 누리꾼의 비판이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를 비롯한 세계 TV의 거대한 트렌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강세다. 물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등장하진 않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범죄나 재난 프로그램의 현장 재현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일반인 출연자를 한 명씩 탈락시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형식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가수, 연기자, 모델, 디자이너, 고급 호텔의 셰프 등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군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우리의 경우는 ‘무한도전’과 ‘1박2일’로 대표되는 체험 버라이어티 형식이 주도하다가, 올해 미국식의 오디션 형식을 도입한 케이블TV 프로그램 ‘슈퍼스타 K’가 화제를 모았다. 이제는 언제든 TV만 켜면 가상 부부, 가상 애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에서 연예계 스타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것까지 다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형식과 구성, 출연자는 천차만별이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와 매력 포인트는 하나다. 내용이나 출연자의 모습이 ‘날것의 사실’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이 결코 100%의 순도를 지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100% 순수한 ‘사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는 없다.

여러 날 동안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서 자막을 붙이고 효과음과 음악을 가미해 내놓은 것이고, 카메라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시청자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결국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된, 그리고 주목과 화제를 위해 적절히 가공된 ‘리얼리티’다.

김성민의 구속에서 우리가 느낀 배신감은 따지고 보면 TV 속의 모습, 그들이 강조한 ‘리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순진함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충격이다.

1990년대 초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를 ‘리얼리티 쇼’로 부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쇼’는 쇼일 뿐이다.

공개되지 않고, 꾸며지지 않은 은밀한 남의 삶을 엿보는 ‘관음주의’는 달콤하지만 종종 이번과 같은 당혹과 배신감, 충격을 느낄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김재범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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