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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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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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인도와 모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유일한 국가다. 몇 년 전만 해도 ‘FTA 변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요즘 한국의 예를 들면서 ‘새로운 개국(開國)’을 강조한다. 교역 확대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FTA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데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김 본부장은 2006년 6월 시작된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로 FTA와 인연을 맺었다. 아홉 차례에 걸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와의 마라톤협상에서 뚝심을 발휘해 2007년 4월 협상을 타결했다. 같은 해 8월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된 그는 현 정부 출범 후에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유임됐다. 미국 EU 인도 페루 등 우리가 맺은 핵심 FTA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김 본부장은 2007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는 식의 논리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가면 나라의 앞날이 없다. 한국은 개방과 경쟁으로 가면 반드시 커진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추가협상이 타결된 뒤 일부 세력은 ‘굴욕 협상’ 운운하면서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가 기존 협정문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을 감안하면 FTA를 백지화하지 않는 한 차선책으로 추가협상은 불가피했다. 협상 결과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랐다. 미국에 자동차 분야를 양보했지만 축산 의약품 등 다른 분야에서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쇠고기시장 추가개방 압력도 버텨냈다. 김 본부장은 이번에도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협상이 시작되면 귀가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2007년 한미 FTA 협상 때는 부인이 매일 옷가지를 챙겨들고 협상 장소로 찾아갔지만 한 번도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김 본부장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자유를 누릴 자유가 없다”면서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는 자연과 가까이 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을 꿈꾼다”고 말했다. 입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들먹이면서 행동과 생활은 딴판인 일부 정치인보다는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몸을 던져 일하는 공직자가 훨씬 애국자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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