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훈]MB, 死則生의 상황 반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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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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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앰비셔스(ambitious·의욕적)’했지만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앰비규어스(ambiguous·애매함)’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면 안보 자체보다 경제 충격을 더 걱정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확고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북의 도발 유혹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

23일의 연평도 피격 상황은 국민과 세계에 북한의 패륜성을 알리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방위태세의 무능을 동시에 드러냈다. 국민은 이 대통령이 5월 24일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담화에서 다시 도발하면 확실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결연하게 다짐하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북이 연평도를 포격하면 전광석화처럼 북의 해안포 진지를 초토화시킬 줄 알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뭔가.

연평도를 공격한 것은 북한군 4군단이다. 북은 군단이 움직였는데 우리는 해병대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6문에 연평도를 맡겼다. 그것도 2문은 고장 난 상태였다. 연평부대는 말이 연대이지 병력은 대대급에 불과하다.

전술과 작전은 지정학(地政學)에 따라 결정된다. 연평도는 섬이라 전력 배치에 한계가 있어 연평부대 임무는 북한군 상륙 저지로 한정됐다. 북한군이 포사격을 하면 대응사격을 하며 진지로 대피했다가 북한군이 상륙하면 결사 저지하는 것이다. 육군은 연평도로 달려갈 수단이 없기에 이 부대를 지원해줄 수 없다. 해군도 연평도와 북한 사이의 바다가 좁아 함대를 투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공군기를 띄워 지원한다는 작전계획(작계)이 만들어졌다.

SLAM-ER 미사일을 장착한 F-15K가 KF-16과 함께 출격했지만 확전을 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연평도 상공만 날아다니다가 귀환했다. 그동안 연평부대와 연평도 주민은 북한군이 스스로 사격을 중지할 때까지 1시간 6분 동안 포격 세례를 받았다. 놀란 주민은 피란을 갔다. 난민은 북한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었다.

작전과 정보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Think the unthinkable, Imagine the unimaginable’이 있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상상해서’ 대비하고 활용하라는 뜻이다. 전체 국력에서 한국에 뒤지는 북한은 남측이 상상하지 못했던 잠수함 작전으로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을 격침시켰다. 연평도 포격에 이어 또 다른 ‘남측이 상상하기 어려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이 일본을 출항한 다음 날 김정일은 6·25전쟁 때 사망한 마오안잉(마오쩌둥의 아들) 묘소에 헌화했다. 사흘 뒤에는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이 방한해 이 대통령을 면담했다. 미국이 움직이면 중국이 개입하니 한반도 문제는 늘 평행선이다.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내려면 이 대통령이 언급한 ‘적극적 억제’를 실현해야 한다. 확전을 방지하며 적의 공격의지를 끊어버리는 게 바로 억제 전략이다.

YS, DJ가 아들 문제로 본격적인 레임덕에 걸렸다면 MB는 안보문제 때문에 레임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 연평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지지도를 끌어올렸지만 지금은 다 까먹다시피 했다. 국민이 대통령의 안보 리더십을 의심할 지경이다. 이 상황을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반전시켜야 할 사람은 이 대통령 자신이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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