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조직 동원한 사찰의 배후 과연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한 대상이 민간인을 넘어 정치인, 국가정보원장, 노조, 언론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직적으로 사찰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정황이 나와 권력층 일각에서 ‘사설 정보기관’을 운영한 듯한 인상마저 준다.

검찰에 압수된 점검1팀원 원충연 씨 등 지원관실 관계자들의 수첩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친박(친박근혜)계인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 전 한국노총 위원장, YTN 임직원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에서 파견된 이창화 전 청와대 행정관이 김성호 전 국정원장,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 친박계인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 측근,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의 부인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친이(친이명박)계인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인도 사찰 대상이었다.

지원관실의 임무는 공직자와 공공기관 종사자의 윤리실태 파악이다. 수첩에 적힌 인물들을 모두 뒷조사했다면 명백히 직무 범위를 벗어난다.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이창화 전 행정관이 사찰에 연루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원관실 직원들의 수첩에 ‘BH(청와대) 지시’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사찰의 배후는 누구이고, 목적이 무엇인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이창화 전 행정관의 당시 상관은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었다. 이후 이 전 행정관은 총리실 지원관실로, 박 씨는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총리실 이인규 전 지원관, 사찰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모두 가까운 박 씨가 윗선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박 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고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이 한때 이 의원과 정치적으로 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 의원의 연루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원관실은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의 주도로 사찰 관련 자료들을 철저하게 파괴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 청와대 행정관 소유의 대포폰(차용폰)을 사용했다. 총리실 의뢰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이 7월 5일인데 지원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나흘 뒤인 9일에야 실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대포폰 이용이나 직무대상 외 인물들에 대한 사찰 문제도 규명되지 않았다.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권의 한쪽 구석에서 감쪽같이 권력형 사설 정보기관을 운영한 듯한 행태를 벌였다면 국가 기강의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야당은 국정조사나 특검을 주장하고, 한나라당에서조차 검찰의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치의 확립과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정부 조직을 동원한 사찰 의혹은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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