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남몽 표절 시비’ 황석영 씨는 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서울 강남을 주제로 한 황석영 씨의 소설 ‘강남몽’이 표절 논란을 낳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조직폭력배 관련 에피소드가 조성식 신동아 기자의 책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 나오는 조직폭력배의 증언 내용과 비슷하다고 신동아 11월호가 보도했다. 조 기자의 책은 2009년 1월 출간됐고 ‘강남몽’은 올해 6월 나왔다. 1년 5개월 시차가 있다. ‘대한민국…’은 수십 명의 조폭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육성을 통해 주먹 세계를 파헤친 논픽션이다.

신동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등장하는 ‘싸움의 달인’ 조창조 씨를 인터뷰한 사람은 조 기자가 유일하다. 조 씨는 ‘대한민국…’에서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다 간파하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라고 술회했다. ‘강남몽’에서 작가는 조창호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각 부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상대방이 권투하는 자세로 나오면 유도 식으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이나 태권도로 공략했다’고 서술했다. 황 씨가 ‘대한민국…’의 내용을 옮겨 썼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대한민국…’은 조직폭력배 김태촌 씨를 인터뷰해 속칭 OB파와의 다툼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OB파와의 전쟁은 이동재 씨가 이석○ 씨를 찌른 동생들을 김태촌 씨 측에 보내 야구방망이로 맞게 함으로써 종결됐다’는 내용이다. ‘강남몽’은 사람 이름을 바꿔 ‘강은촌 부하들이 그들을 야구방망이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뒤 말썽은 종결됐다’고 쓰고 있다. 신동아는 두 책의 이처럼 유사한 내용을 10여 대목 소개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8년 논문 표절과 관련해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등을 표절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강남몽’은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렵고 최소한 저작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법적 논란을 떠나 당당하게 출처를 소명하는 것이 양식 있는 작가의 도리다.

그럼에도 황 씨는 신동아 측의 의견 요청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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