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경미]주관적 평가 신뢰도가 문제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29 03:00수정 2014-08-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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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학 동안 대치동에 장애아가 갑자기 늘어났다. 어떤 복지시설이 방학 중 장애아를 맡아주면 하루 8시간씩 30일, 총 240시간의 봉사확인증을 발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학원에 간 동안 장애아를 돌보아준 엄마의 노고로 수백 시간의 봉사활동을 챙긴다. 부모에 의존한 위조 봉사와 학생이 직접 전심전력으로 한 봉사는 면접을 해보면 금방 드러나지만 서류 심사 단계에서 진품과 위조품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는 서류 대필(代筆) 업체가 성행해 수사가 진행됐다. 이런 업체들은 요즘 아이들이 쓰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표현을 쓰면서 서투르지만 진솔한 스토리를 엮어 학생 분위기를 풍기고, 역으로 학생 중에는 성인 문체로 세련되게 내용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으니, 입학사정관이 대필과 표절을 판별하기 쉽지 않다. 특히 고액의 자기소개서는 기존 것을 재활용하지 않고 맞춤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표절 여부를 검색하는 서류검증 시스템이 개발되더라도 피해갈 수 있다.

위조 봉사-자기소개서 대필 횡행

지난달 발표된 후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수능 개편안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번 개편안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탐구가 축소되고 언어 수리 외국어의 영향력이 높아진 점이다. 특히 내년부터 적용될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각 학교가 20% 범위 내에서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갖기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그 외의 과목을 홀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내년 교육과정에 대비해 학교는 탐구 과목이나 제2외국어 전공교사를 전출시키거나 복수전공 연수를 통해 다른 과목을 가르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의 전문성 부족이 지적되는 마당에 최소한의 연수만 마치고 전공하지도 않은 교과를 가르치게 된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 올해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 사회 과목은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교육청이 많다. 또 주요 교과 중에 유독 국어 교사 신규 채용만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영어와 수학에 비해 국어는 진입장벽이 낮다고 보아 타 교과에서 국어로 바꾼 교사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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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개편안의 또 다른 골자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B형과 그보다 쉬운 A형이 생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능의 변별력은 낮아지고 그 영향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수능 영어의 경우 2016년부터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급수로 대체되니, 대부분의 상위권 학생은 동일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극심한 대입 경쟁에서 필터 역할을 할 다른 요소가 필요한데, 객관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봉사활동과 자기소개서 등을 신뢰하는 것은 왠지 불안하다.

얼마 전부터 미국 교육부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전면 폐기하는 학력평가 개혁에 착수했다. 수능의 경우 일부의 단답형을 제외하고는 오지선다형이다. 이런 선택형 문항은 구시대적 유물처럼 여겨지고, 선택형으로 인해 우리 학생들의 창의력이 저하되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선택형은 서술형 못지않게 피험자의 고등사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 답을 구성해 내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관련성이 깊은 것, 가장 거리가 먼 것과 같이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답을 고르는 능력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교육청들은 일선 학교가 서술형을 많이 내도록 하기 위해 문항 유형의 비율을 제시하는데 그러다 보니 의미 있는 서술형보다는 사실적인 정보를 묻는 단답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서술형 채점 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교과서와 노트필기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경우만 정답으로 인정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고를 고착화하는 면도 있다. 선택형이든 서술형이든 내용의 타당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문항 유형의 비율을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사정관제 속도전은 위험

수능과 내신, 경시와 인증시험처럼 정형화된 요소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고, 전공과 관련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평가하는 입시의 방향은 분명 바람직하다. 지필검사에 의한 정량적 선발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소질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취지는 옳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 사회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요소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성숙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입학사정관제를 수용할 만한 사회적 정신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모두에게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교육은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속도전이 아니다. 행정고시 개편에 대한 수정안이 마련됐듯이 입학사정관제의 급격한 확대도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다.

객원논설위원·홍익대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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