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우열]죽어서도 눈 못 감는 112명의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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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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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의 11보급대대엔 1971년 8월 23일 한날한시에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 유해가 20구나 보관돼 있다. 이날 서울로 진입하던 중 군경과 교전을 벌이다 죽은 실미도 대원들이다. 사건 당시 불법 매장된 이들의 시신은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수습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유족과의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들의 유해를 다시 매장하지 못하고 있다. 1998년 공동경비구역 벙커에서 숨진 김훈 중위도 12년째 유골 상태로 남아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이 19일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9월 현재 실미도 대원들처럼 봉안소와 군병원에 보관 중인 군인 시신과 유해는 112구이다. 이 가운데 병원에 22구가 냉동된 채로 보관돼 있으며 봉안소엔 유해 90구가 있다. 2008년엔 15구, 2009년 6구가 새로 들어왔다.

장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군인들의 시신과 유해가 이처럼 늘어나자 국방부는 최근 차관 주재 회의까지 열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시신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군인들의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유가족과의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미도 대원들을 제외하면 이들 군인의 사망 사유는 대부분 자살 또는 사고사라고 군은 밝혔다. 그러나 유족들은 그 같은 군 조사 결과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들은 국가배상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뿐 아니라 시신을 넘겨받아 매장하고 나면 이들의 사인(死因) 규명이 영원히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김 중위의 아버지처럼 본인이 예비역 중장이면서도 “아들은 자살했을 리 없다”며 10년 넘게 군 당국과 맞서는 일도 생겼다.

정 의원은 “군은 우선 군내 사망사건에 대해 유족들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사고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법 규정을 정비해 사망 후 일정 시일(10∼20년)이 지나면 국공립묘지 등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군이 이들 유족과 공상 처리나 보상을 놓고 수십 년간 실랑이하며 시신을 방치하는 모습은 딱해 보인다. 이유야 어떻든 군복무 중 숨진 젊은이들이 이제라도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군 당국이 유족들과 다시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 대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최우열 정치부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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