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찬욱]올해 정기국회를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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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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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국가의 의회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였다. 여의도 국회의 정기회가 3일째로 접어든 시점이었다. 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의회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우리 국회의 현주소를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머지않아 11월이 되면 한국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정기국회 회기 중에 열리는 국가행사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외국인의 시선이 한국에 쏠리게 될 것이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를 의식하며 우리 국회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중국이 주요 2개국(G2) 반열에 서고 아시아의 부상이 운위된다. G20에 속하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을 포함하여 5개국이다. 하지만 아시아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서유럽과 같이 일반인이 최고 수준의 자유를 향유하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다. 한국 일본 대만 3개국이 두 번째 수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군에 들었을 뿐이다.

이번 회기중 G20정상회의 열려

2010년 현재 절대군주국가인 브루나이, 군정체제의 미얀마에는 의회가 없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명목뿐인 대의기관이고 라오스와 베트남의 국민회의는 경쟁적 선거를 통한 국민직선 기관이 아니다.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가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지만 베트남의 경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캄보디아 태국에 국민직선 의회가 있지만 실제로 정치경쟁은 제한적이고 집권엘리트 주도의 하향식 독재가 행해진다. 필리핀 의회는 경쟁적 민주주의 무늬만 있고 내용을 보면 소수 가문에 의한 봉건 과두지배 아래 있다. 비교 관점에서 보아 한국 일본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가 아시아의 대의민주주의 국가로 손꼽힌다.

다소 장황하게 아시아 각국의 의회를 들먹인 까닭은 한국도 이제는 경제 강국의 목표 말고도 모범적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뜻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일을 제대로 하여 훌륭한 대의민주정치의 전통을 세워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밝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문화 및 정치와 같은 소프트 파워도 손색없이 길러야 한다. 우리 국회가 성공한다면 아시아 국가는 북미나 서유럽보다는 한국의 의회를 닮고자 할 것이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로 확산된 한류 대중문화의 영향을 보면 한국이 정치도 인정받아 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다른 세계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와 미래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국회가 되려면 이른바 입법전쟁이 수반하는 폭력은 절대 금물이다. 국회 폭력은 신문과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에 알려지고 우리 국회는 졸지에 웃음거리가 된다. 한국과 대만은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국가인데 불명예스럽게도 의정무대에서 몸싸움과 난투극이 종종 발생한다. 의회는 말로써 일하는 기관이기에 쟁점이 있다면 ‘요설(饒舌)의 장소’라고 불릴 만큼 시끄러워도 좋다. 다만 점잖게 말로 따지고 몸으로 싸워대지는 말아야 한다.

‘아시아의 모범’ 보여줄순 없을까

우리 국회가 연상시키는 부정적 이미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당의원은 행정부를 감싸고 야당의원은 호통 치며 폭로에 힘을 쏟는다. 지역구 개발사업 챙기는 일이 예산심사이고 예산안은 파행을 거듭하다 법정 시한을 넘겨 처리된다. 법안은 산적하나 공청회는 열리지 않고 계류되다 회기 막판에 무더기로 통과된다. 본회의장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적지 않다. 의원윤리 사안은 자율적으로 다룰 것도 사법부 결정에 기댄다. 정쟁의 와중에서도 의원보좌관을 늘리고 수당 올리는 데에 급급하다. 개혁 개편 개선을 늘 외치지만 현상은 쉽게 타파되지 않는다. 거리와 사이버 공간에서 여러 견해와 이해가 상충하는데 원내의 여야 정당은 이를 완화하기는커녕 확대하고 있다.

얼마 전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끝에 사퇴하면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가 상대했던 국회의원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2010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정치인의 윤리기준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 수준에서 한국은 세계 139개 국가 중 105위, 정책결정의 투명성에서 111위를 기록하였다. 이런 형편이라면 한국이 전체적으로 국가경쟁력 22위를 차지한 것은 퍽이나 다행스럽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의원이 하기 나름이다. 빈번한 정쟁, 미흡한 정책 역량, 편협한 대표 기반을 극복해야 한다. 국민은 물론 세계가 이번 정기국회에 주목할 것이다. 정치인부터 국가의 품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것이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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