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화영]독자가 귀해진 계절의 문학상

동아일보 입력 2010-09-04 03:00수정 2010-09-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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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월이다. 지루한 여름 장마와 더위가 서서히 물러나고 남쪽으로부터 불청객인 태풍 소식이 온다. 이 무렵이면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긴 바캉스에서 돌아오고 각급 학교는 새 학년도를 준비한다. ‘랑트레’의 시즌이 다가오는 것이다.

출판계도 분주해지고 신간소설이 쏟아져 나온다. 곧 공쿠르상을 비롯한 유수한 여러 문학상에 관심이 집중된다. 문학도 가을이 수확의 계절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상금의 액수도 증가하는 추세인 문학상 중에 여러 상이 머지않아 수상자를 발표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가장 치열한 관심의 대상은 단연 노벨문학상이다.

노벨문학상 심사의 스케줄은 매년 9월에 시작된다. 스웨덴 한림원은 전 세계의 자격을 갖춘 1000여 명의 인사들에게 다음 해의 후보자 추천을 요청한다. 추천서는 이듬해 2월 1일 이전에 극비로 전달되어야 한다. 벌써 여러 해 전이지만 파리에서 아카데미 공쿠르의 심사위원인 어떤 지인을 통해서 우리나라 문인의 추천을 의뢰하는 기회에 필자도 보았던 그 신청서는 비교적 간단한 서식에 불과했다. 거기에 물론 자세한 추천이유서와 자료를 첨부하는 것이 보통이다.

매년 350명 가까운 문인들이 추천되는데 노벨위원회와 노벨 인스티튜트가 2월 1일부터 심도 있는 조사를 시작하여 그 수를 15명에서 20명 정도로 압축해 해당 자료를 심사위원회로 넘긴다. 5명의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는 5월에 5명의 예선 후보 명단을 작성한다. 금년에 만약 어떤 한국 문인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이미 이 5명의 명단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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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가을이 수확의 계절

그리고 9월에 심사위원들은 이 5명의 문인이 쓴 작품을 해독 가능한 언어로 정독하고 10월 초에 토론을 거쳐 투표한다. 과반수를 획득한 인물이 수상자로 결정된다. 나머지 4명은 자동적으로 다음 해의 후보자가 된다. 이 토론 내용과 예선에 오른 나머지 4명의 명단은 이후 50년간 비밀이다. 10월 중순 심사 결과가 공식 발표되는데 이는 결정적이고 취소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1958년, 1964년에 수상을 거부한 파스테르나크, 사르트르도 여전히 수상자 명단에 남아 있다.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청에서, 그 밖의 4개 상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음악당 대연주홀에서 열린다. 오전에는 모든 참석자가 예행연습을 하고 오후의 시상식에서 메달과 상장, 그리고 재단의 자산운용 성적에 따라 가변적이지만 약 100만 유로(약 14억 원)에 해당하는 상금을 수여한다. 가장 화려한 세리머니는 시청에서 거행되는 만찬으로 왕년의 프랑스 루이 14세 궁정을 연상시키는 이 전례에는 2000명 이상의 인사들이 초대된다.

수상자는 시상식 전후 이틀 사이에 의무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와 문학적 지향에 관한 수상 강연을 해야 한다. 사흘 뒤인 12월 13일, 성녀 루치아의 날, 이른 아침 해 뜨기 전 흰옷을 입고 머리에 촛불 왕관을 쓴 8명의 처녀들이 수상자의 침상으로 가서 그를 깨우며 성녀의 찬가를 부른다. 이 통과의례의 촛불은 계몽주의자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 위대한 수상자들이 광명 속에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과연 금년 12월 13일에는 한국문인이 그 아름다운 처녀들의 시중을 받게 될까? 이 상에 대한 관심으로 말하면 아직 수상자를 내지 못한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적’이다. 매년 10월 초순이면 여러 언론매체 기자들이 미리부터 지레짐작한 몇몇 유명 문인 댁 앞에 진을 치는가 하면, 한술 더 떠서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문학인에 대한 여론조사까지 하는 기현상을 연출하는 나라, 이런 나라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 국내의 ‘여론’이 노벨문학상을 결정하기라도 할 것 같다.

한국, 노벨문학상 받을 자격 있나

물론 우리나라에서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벨상에 그토록 치열한 관심을 갖기 전에 ‘우리가 과연 문학작품의 진정한 독자인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순서일 터이다.

문학을 국력신장이나 부가가치 증가의 도구로만 여기는 지도자들, 베스트셀러 목록과 판매부수에만 관심이 쏠린 언론, 실용서와 입시 참고서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독자들, 그리고 아예 책과 담을 쌓은 애국자들에게라면 이 나라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들 그 상은 속이 빈 껍질, 혹은 일회성 화젯거리에 그칠 위험이 있다. 독서는 남에게 시키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이고 노벨문학상의 진정한 가치는 진정한 독자들이 만드는 것임을 혹시라도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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