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양날의 칼 ‘공정한 사회’

동아닷컴 입력 2010-09-01 20:00수정 2010-09-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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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새 개각 명단이 발표된 것은 8월 8일이고, 광복절 특사 발표는 8월 13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새 국정 기조로 삼겠다고 한 것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다. 비리 정치인의 사면과 흠 많은 총리·장관 후보자의 내정, 그리고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도 이런 부조화 조합이 불과 1주일 사이에 왜 같이 나온 것일까. 청와대 사람들이 생각이 짧다거나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이 급조된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당초 청와대의 인식 때문이라고 본다. 공정한 사회가 새 국정 기조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7월 16일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직후부터라고 한다. 공정한 사회는 지향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사회적 약자가 대상이면 불이익을 주지 않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식의 시혜적 의미를 띤다. 반면 사회적 강자가 대상이면 반칙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억제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는 이 가운데 전자를 택한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 그 해답이 있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또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고,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실제로 공정한 사회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친서민 중도실용’에 그 맥이 닿아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한다.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몸통에 공정한 사회라고 하는 ‘가치의 옷’ ‘철학의 옷’을 입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반대세력은 줄곧 가치의 빈곤, 철학의 빈곤을 비판했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의 이미지나 실용을 국정운영의 행동규범으로 내세운 것과 관련한 인상론적 비평이지만 대중 정서에 그런대로 부합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이명박 정부로서는 대표적인 가치 브랜드로 내세울 만한 것이 변변찮다. 친서민과 중도실용이 국민 다수의 마음을 얻고는 있지만 둘 다 가치나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친서민은 편향적이고 포퓰리즘 냄새가 난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정비전으로 제시한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도 궁극적인 도달 목표는 될지언정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삼기엔 어색하다. 그래서 친서민을 지향하면서도 가치의 개념을 띤 것으로 새로 고안한 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보면 된다. 이와 더불어 상대 진영과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가치의 선점도 청와대가 노린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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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설정했던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이 인사청문회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적 강자를 대상으로 반칙과 특권을 배격하는 의미까지 함께 갖는 것으로 변했다. 청와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개념의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국민에게 단시간에 새로운 국정 기조를 확실하게 각인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공정한 사회가 이명박 정부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지, 정권 재창출과 국정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촉매제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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