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지속가능성 보고서’ 쓰는 경영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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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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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가 4월 ‘아름다운 동행, 희망의 첫걸음’이라는 첫 번째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펴냈다. 86쪽짜리 책자에는 이 회사가 지난해 경제 사회 환경 등 세 영역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국제적으로 공인된 78개 지표를 중심으로 정리돼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별도의 팀을 구성해 회사 실적을 재분석했고 글로벌 검증기관의 검증도 받았다.

비즈니스에 바쁜 대기업들이 컨설팅을 받아가며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이유는 주변의 요구가 커진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은 국제 투자가나 거래 기업에 경영 실적과 전망을 잘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요즘은 매출 이익 등 실적 외에 이산화탄소 배출과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윤리 인권 등 사회적 분야에서 어떤 공헌을 했는지도 공개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기업 경영자도 과거에는 주주들만 잘 모시면 됐지만 요즘은 소비자 종업원 하청업체 금융기관 시민단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도 잘 소통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쓰지 않은 기업이 당장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작성 의무도 없다. 현재는 국제기구나 연구단체들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에 보고서 제출을 권유하는 단계다. 관련 기구에 가입하면 1, 2년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조건이 붙는 정도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세계표준이 완성돼가고 있어 몇 년 내에 평가 및 인증제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과 미국의 정부나 기업이 국제 입찰과 계약에 앞서 ‘지금까지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여 달라’는 조건을 언제 내놓을지 모를 일이다.

국내 기업이 하청 중소기업과 아무리 상생을 잘해도 이를 검증된 보고서로 정리하지 않으면 실적을 인정받기 어렵다. 평소 실력은 좋지만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공인기록이 없는 선수와 같다. 거래 기업이 주는 감사패 또는 상생 활동을 소개한 기사 스크랩 정도로는 국제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체계가 갖춰진 지 이제 10년 정도다. 국내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기업 현대모비스도 올해 들어서야 보고서를 냈다. 기업들이 지금부터라도 신경을 쓰면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우등생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고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면제되지 않는다. 업종과 소재지 등 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나름대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노력을 하고 이를 보고서로 정리하면 된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일본 중소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에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첫해인 1999년 10개사에서 지난해 1400개사로 급증했다. 국내 기업 참여는 2003년 현대자동차 포스코 삼성SDI 등 3개사에서 지난해 54개사로 늘었다. 중국은 한때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새로운 무역장벽’이라고 비난하더니 금세 이를 수용했고 지난해에는 52개사가 GRI에 보고서를 냈다.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적응이 우리도 빠르지만 중국은 더 빠르다.

국내 상장기업의 사업보고서에 노사관계 환경 반부패 인권 등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정보를 함께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제159조 2항)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상장기업은 정식 보고서 발간은 아니라도 이 정도의 정보 공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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