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음악이 젊은이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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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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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군가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봤던 눈길이 있었는가. 내 경우는 다행히도 단 한번이었다. 깨진 병과 최루탄 탄피가 뒹굴던 1980년대 대학 교정, 생각에 잠겨 걷고 있던 내게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고민 있냐?”

당시 마음을 사로잡던 문제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 그게,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친구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야, 그런 게 문제냐? 철 좀 들어라.” 속상하진 않았다.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답답함은 깊어졌다.

“음악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11일 ‘앱솔루트 클래식’ 기자간담회에서 첼리스트 겸 지휘자 장한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장 씨는 서류심사와 동영상 오디션으로 선발한 100여 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2주 동안 연습시켜 28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세 차례의 연주회를 연다. “물 한 방울은 작지만 물방울이 모이면 나무가 자라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죠. 한 사람씩 음악이 주는 감동을 나누다 보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거예요.”

8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실에서 만난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말도 비슷했다. “자라나는 세대가 위대한 음악의 세계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고 느끼면 세상이 한 걸음 나아갈 텐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왜, 어떻게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인가. 사실 이는 증명하기 난감한 명제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에 공헌한다든가 성취욕이 높다는 식의 검증된 통계는 없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사회 음악 훈련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결실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이 세계적 조명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범죄율을 낮추고 빈민층 어린이의 계층 극복 효과도 크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그러나 이 경우도 음악의 힘이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인지, 단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오케스트라의 ‘참여적’ 특성이 효과를 나타낸 것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 씨와 정 씨의 열정에 공감하는 것은 세상이 증명할 수 있는 일로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 씨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경이로운 체험을 30∼40분 동안 압축해 경험하게 해주는 게 클래식이고 교향악”이라며 행사를 통해 ‘감동의 에너지’가 퍼져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세상을 감동의 에너지로 채울 것이라면 연주에 참가하지 않는 청중의 참여도 늘렸으면 좋겠다. 다행히 장 씨는 행사기간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내년 이후엔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는 연주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 연주자에게는 호기심과 열정을 갖춘 관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1977년 8월 서울에서는 ‘주네스 무지칼 월드 오케스트라’ 한국대회가 열렸다. 각국에서 모인 청소년들이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치열한 연습을 거쳐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때 참가한 한국 청소년 여럿이 오늘날 훌륭한 연주가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관악기나 현악기와 거리가 멀었던 한 초등학생은 TV로 방영된 행사 다큐멘터리를 보며 열광했다.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습 현장도 보았으면”이라고 생각했던 그 어린이는 오늘날 동아일보에 공연정보와 연주회 리뷰를 쓰는 기자가 됐다.

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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