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西安, 慶州,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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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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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 시안(西安)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兵馬俑) 갱이 있는 곳, 당나라의 수도(장안·長安)였던 곳. 시안을 여행하는 3박 4일 내내 천년고도 경주가 떠올랐다.

시안의 인구는 850만 명, 1년 관광객 500만 명(외국인 40만 명). 시안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시(陝西)역사박물관, 보는 이를 압도하는 병마용 갱,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배어 있는 화칭츠(華淸池)….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다.

그 많은 사람들에 놀랐지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야간 공연이었다. 한 호텔 공연장에서 매일 열리는 산시가무쇼. 500여 석에 35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채웠다. 관객의 절반 이상이 서양 사람이었다. 당나라의 음악과 무용, 현장법사의 구도 기행,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등을 다룬 공연이었다. 그리 고품격의 쇼는 아니었다. 다소 허술한 대중적인 쇼였다.

그러나 이를 관람하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의 시선은 달랐다. 모두들 당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았다는 표정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은 화칭츠 연못 앞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는 ‘장한가(長恨歌)’ 공연도 열린다고 한다.

경주가 생각났다. 경주엔 이 같은 야간공연이 없다. 간혹 안압지에서 뮤지컬이 열리지만 어쩌다일 뿐이다. 경주에도 야간 공연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서 열려야 한다. 밋밋한 보문단지가 아니라 고분 옆에서, 첨성대 옆에서, 황룡사 터에서 아니면 국립경주박물관 뜰에서 말이다. 쇼도 좋고 공연도 좋다. 경주의 밤, 신라의 달밤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경주의 도심 한복판에 경주의 문화와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는 전용 공연장도 필요하다. 물론 저층으로, 역사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1000년간 왕조의 수도였던 곳은 전 세계에 경주밖에 없다. 그러니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많다. 백마가 등장하는 신라 건국설화, 황금 유물과 함께 거대한 고분에 순장당한 사람들, 젊은 화랑들의 꿈과 사랑,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과 그의 수중릉, 석굴암과 다보탑 석가탑을 만들었던 장인들의 낭만과 열정, 실크로드를 건너온 서역인과 유럽 문물….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낮에만 경주를 둘러보고 보문단지 호텔에서 조용하게 밤을 보내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주의 밤은 너무 조용하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경주의 밤을 활용해야 한다. 경주만의 콘텐츠로 세계인의 발길을 이끌어야 한다.

시안의 장안성(長安城)도 장관이었다. 특히 성곽 밑으로 도로가 지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도로 차선 수만큼 아치를 만들어 놓았다. 그 모양도 매력적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로 들어가는 듯하고 성 밖으로 나오면 현대로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서울은 어떠한가. 국보 1호 숭례문과 서울성곽은 어떠한가. 도심 거리에 있던 성곽은 모두 사라졌고 북악산이나 인왕산 등에만 일부가 남아 있다. 산에 있는 성곽만으론 부족하다. 평지의 도로에서도 성곽을 만날 수 있도록 성곽을 최대한 복원해야 한다. 그래서 숭례문 서쪽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도 성곽을 복원해야 한다. 거기 아치형 통로를 만들어 차량이 다니도록 하면 된다. 어렵다고 주저할 필요가 없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광표 문화부 차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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