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한상렬 목사 차라리 북한에서 선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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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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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의 물결이 고조(高潮)를 이루던 시기에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평양 봉수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봉수교회는 1988년 북한에도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선전하고, 해외교포들로부터 물질적 기부를 받는 데 활용하려는 의도로 건립됐다. 중국의 영향도 있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교회와 사찰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던 중국에서 덩샤오핑 집권 후 제한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부활되던 시기였다.

나는 봉수교회에서 만난 북한 관리에게 “중국에서 일반인이 교회에 다닐 수 있지만 포교는 불법이고 공산당원은 종교를 가질 수 없다. 북한 사정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 같은 당원은 두 개의 종교를 가질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북한 체제를 종교로 보는 노동당원의 인식이 놀라웠다.

우리 일행이 순안공항에 내려 호텔에 짐을 풀기도 전에 데려간 곳이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는 만수대 언덕에 있는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었다. 동상은 햇볕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났다.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이곳에 와서 신고를 올려야 한다. 신혼부부들은 동상에 꽃을 바치며 90도로 허리를 꺾어 경배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독교 배척하는 ‘정치종교’ 집단

주체교는 신자 수로 보면 세계 10대 종교에 들어간다. 미 해군 군목을 지낸 토머스 벨크 목사는 ‘주체: 북한의 국가종교에 대한 기독교적 연구’라는 저서에서 주체교가 유대교 시크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보다 더 많은 신봉자를 거느린 종교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은 ‘주체를 공산주의의 이단적 분파라고 분류하는 것은 불교를 힌두교의 분파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부정확하다’고 진단한다.

김일성이 집무하던 주석궁을 사후 묘지로 리모델링한 금수산기념궁전은 거대한 신전(神殿)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만경대 생가,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거짓 선전을 하는 백두산 밀영은 북한 사람들이 순례하는 주체교의 성지(聖地)다. 가정에 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모셔놓는 것도 신흥종교를 연상시킨다.

평양에 머무르면서 다른 일행과 함께 와 있던 한상렬 목사를 처음 만나 악수를 교환했다. 한 목사는 그때도 수염을 기르고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필자와 방을 함께 쓴 목사는 예수교 장로회 소속인데 기독교 장로회 소속인 한 목사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목사에 대해 “교회가 크면 교인들의 구성이 다양해져 저런 활동을 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에는 봉수교회 외에도 칠골교회가 있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는 칠골교회의 장로였다. 딸(김일성의 어머니)의 이름을 ‘강반석(盤石)’이라고 지은 것을 보아도 신앙심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의 아버지도 미션스쿨인 숭실학교를 다녔다. 기독교의 영향 아래서 성장한 사람을 최고지도자로 둔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견디다 못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종교와 유사성을 가진 정치 이데올로기를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라고 부른다. 정치종교는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정치종교는 전통적 종교와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른 종교를 대체하거나 말살하려 든다. 다른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정치종교에 대한 충성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치종교의 반대자들은 추방 또는 강제수용돼 재교육을 받거나 살해된다. 북한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은 전형적인 정치종교다. 김일성은 주체교의 유일신(唯一神)이다. 그는 죽어서도 북한을 유훈(遺訓) 통치한다. 주체교의 나라에서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도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을 신격화하고 타 종교를 말살하는 정치종교 현상이 심각했다. 전통적 종교는 마르크스의 이념으로 대체돼야 할 봉건적인 미신으로 규정됐다. 인민은 마오쩌둥을 ‘붉은 태양’ ‘위대한 교사’로 찬미하고 학생과 근로자들은 마오의 초상 앞에서 충성 결의를 다지는 의식을 가졌다. 중국의 정치종교 현상은 마오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마오와 소련의 스탈린에게서 배운 북한의 정치종교는 김일성의 집권기간이 길고 아들로 세습되면서 더 번성했다.

하나님 사랑은 왜 남쪽에만 있나

한 목사가 판문점을 통한 광복절 남행을 연기한 모양이다. 나는 그가 북한 선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신교 일부 교회들은 이교도의 목을 자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땅에도 선교사를 파송한다. 한 목사가 기왕 어렵게 간 김에 그곳에 남아 선교사로 활동했으면 어떨까 싶다. 북한 주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주체교가 반(反)인륜 이단(異端)임을 알리는 데 힘을 쏟으면 성속(聖俗)을 넘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왜 남조선에만 있어야 하는가.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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