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공기업은 썩어도 책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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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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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초 아파트를 많이 짓던 건설회사 한양이 부도가 났다. 건설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해 약 2조 원의 은행 부채를 안고 있었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공기업인 주택공사(주공)에 인수시켰다. 당시 주공의 박승 이사장은 이사회를 소집해 특정 민간기업의 부채를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이사회 의결 내용을 청와대에 보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주공은 한양을 살리기는커녕 적자를 더 키웠고 그 바람에 주공마저 약 6000억 원의 누적적자를 안게 됐다. 민간기업의 부실을 공기업에 떠넘긴 것이다.

정부가 떠넘긴 부실과 무책임 경영

이유야 어쨌든 주공은 한양 인수로 인해 엄청난 적자를 안게 됐다. 민간기업이 기업 인수로 수천억 원의 적자를 봤다면 십중팔구 파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공에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공기업 경영이다.

주공과 합쳐 LH가 된 토지공사의 빚 내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단지 혁신도시 같은 국책사업을 벌이다가 부채가 쌓였다. 민간기업이라면 지역균형 같은 정치논리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사업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118조 원에 이르는 LH 부채는 무리한 국책사업과 방만한 경영의 합작품이다.

빚더미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 LH가 사업을 중단하자 보상을 기다렸던 주민과 중소기업은 아우성이다. 신도시가 예정됐던 곳에선 LH를 비난하는 시뻘건 글씨의 현수막이 나부낀다. 정치권에선 책임 공방이 가관이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추진한 주공과 토공의 합병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키운 빚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따지고 보면 정치권이 정부보다 책임이 더 크다. 정치공학적인 계산으로 정치권이 남발한 세종시 혁신도시 신도시 개발이야말로 부실의 주범이다. 지역구 표를 얻기 위해 억지로 끌어들인 신도시와 산업단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정치권이 내놓은 대책도 한심하다. 정치적 이해득실이 들여다보일 뿐이다. LH가 진행 중인 전국의 414개 사업 가운데 정치적 이해가 걸린 지역의 사업 진행만 고집한다.

재정 지원이라는 정치권 해법대로 간다면 부실은 악순환하며 깊어질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빚을 갚아주고 정치적 힘의 우열에 따라 퇴출 사업과 지역을 결정한다면 누가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이른바 영국병(病)을 수술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공기업’을 민영화 등의 고강도 개혁으로 변화시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권마다 공기업 개혁을 외쳐왔지만 민영화는 후퇴했고, 인적 구조조정과 왜곡된 노사관계 선진화도 요원하다. 노조원들에게 ‘신이 내린 직장’일 뿐이다.

민영화 구조조정 없인 부실 악순환

1970년대의 영국병을 보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우리 또한 영국이 걷는 길을 뒤따르고 있으니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이제는 일본까지 재정악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어느덧 우리 차례가 된 것인가.

문제는 재정이 아무리 부실해도 공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나라는 재정이 나빠지면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공기업은 국민 세금이 메워주니 경영이 방만해질 수밖에 없다. 이 정부 출범 초기에 거창했던 공기업 개혁도 시들해졌으니 누가 공기업 경영을 견제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번에 세금에서 지원하더라도 공기업을 민영화해 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공기업이 파생상품 같은 사업을 벌일 수 없게끔 사업 구조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서민용 임대주택 사업을 잘해야 할 LH나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일반 분양아파트에다 리스크가 큰 주상복합 상가 사업에까지 뛰어들어서야 부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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