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혜리]확 늘어난 보육시설, 질적 수준 의논할 창구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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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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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여름, 한국은 두 아이의 참사로 무척 시끄러웠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어린 남매가 밖에서 잠긴 집 안에서 놀다가 화재로 질식사했다. 이 참사는 맞벌이 가정의 영유아 보육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져 1991년 1월 시행됐다.

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1990년의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육시설의 양적인 확충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년간 보육은 양적으로 많이 발전했다. 1991년 1900개에 불과하던 보육시설은 20년 후 3만4000개 이상으로 늘었다. 이 시설들에서 돌보는 영유아는 4만8000여 명에서 100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보편적 보육서비스 확대에만 집중하다 보니 품질과 다양한 요구 충족이라는 측면에서는 미흡하다. 보육의 질을 높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할 내용은 부모의 요구에 적합한 보육의 질은 어느 수준인가이다. 이와 관련해서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어린이집 원장이 털어놓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3월 초, 부모가 아이를 이 어린이집에 꼭 보내고 싶은데 사정이 어렵다고 하여 보육비를 3만 원 정도 덜 받기로 했다고 한다. 3개월 뒤에 그 부모가 근처에 새로 생긴 43평형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 정도면 3만 원의 비용을 할인할 만큼의 절박한 가정이 아니라며 속상해했다. 모든 부모가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점은 국가가 보장하는 보육서비스는 세금으로 제공하므로 개별적 요구 수준을 모두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도 보육의 질을 이야기하면서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의사소통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시민 정부 전문가와 보육시설의 장이 함께 모여 영유아에게 적합한 보육서비스의 수준과 내용,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이나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보육교사에 대한 배려의 정도, 이를 위해 국민이 부담하려는 세금의 수준, 개인적으로 부담하고 선택할 수 있는 보육서비스의 범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백혜리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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