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김현희와 일본의 이중성, 한국은?

  • Array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현희 씨가 3박 4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23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일을 보면 납치 문제를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에 새삼 경탄한다. 국가의 가장 큰 존재 이유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된다. 400여 명의 납치 피해자가 있는 한국 정부는 그간 뭘 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김 씨는 다 알다시피 1987년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주범이다. 범죄 과정에서 일본 여권을 위조했다. 법적으로 일본 입국 거부 대상자다. 그러나 그는 국빈급 예우를 받았다. 일본은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특별기로 ‘모셨고’, 기내에서 입국심사를 마쳤다. 당국자가 겹겹이 대형 우산을 펼쳐들어 김 씨의 언론 노출을 막았고 전직 총리의 별장과 최고급 호텔에 묵게 했다. 경찰 100명과 차량 10여 대가 동원된 경호에다 헬기 관광이 제공됐다. 그동안 한국의 일부 전직 총리급 정치인이나 경제계 지도자에 대해서도 ‘여권법’을 들이대며 굴욕적인 입국 절차를 깐깐하게 요구하던 일본 정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일본 정부는 김 씨에게서 납치와 관련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이벤트를 했다. 그들은 이미 몇 차례 김 씨를 직접 조사했다. 20여 년 전에 북한을 떠난 김 씨가 “○○는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라거나 “다른 납치 피해자도 만난 것 같다”고 말하는 것 또한 난센스다. 그토록 납치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왜 이제야 입을 여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일본 언론도 마찬가지다. 김 씨를 꼬박꼬박 ‘전 사형수’라고 부르던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방일을 앞두곤 슬그머니 ‘전 공작원’으로 호칭을 바꿨다. 취재 헬기까지 동원해 김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했다. 그만큼 정부와 언론을 막론하고 자국 국민의 생명과 인권에 대해서라면 무한한 애착을 보이는 게 일본이다. 그러나 그 애착이 국제적 공감을 얻으려면 눈을 돌려 일제강점기 수많은 징용·징병자에 대해서도 상응한 관심과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김 씨와 한국 정부에도 다소 유감이다. 아직도 국내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유족이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살고 있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도리로 치자면 김 씨는 먼저 이들을 찾아가 사죄하는 게 순서다. 정부도 일본의 김 씨 방일 요구에 응하기 전에 이런 자리를 먼저 주선하는 게 우리 국민에 대한 도리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