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정두언 비망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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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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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선진국민연대의 문제는 KB금융지주(인사 개입 의혹) 건 곱하기 100건은 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떨어지면 그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비망록으로 정리해서 다 밝힐 것”이라고 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월권 및 인사 개입 의혹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작은 문제가 아닌데 곱하기 100건이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선진국민연대는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조직에서 출발했다.

정 의원의 주장은 작금의 문제는 자신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 간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선진국민연대의 국정농단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물론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을 비롯한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주장은 다르다. 정 의원 중심의 일부 친이(친이명박) 세력이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을 죽이기 위해 의혹을 부풀리고 퍼뜨리는 식으로 ‘등에 칼을 꽂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은 공식 해체됐지만 한때 460만 명의 회원을 거느렸던 선진국민연대와 관련해 빚어지고 있는 다툼이라는 점이다.

사실 정권 내 사조직 문제는 비단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늘 두통거리였다. 경선이나 선거를 치르는 후보 처지에서는 도움 받을 때는 좋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뒷감당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 때의 월계수회, 김영삼 정권 때의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 김대중 정권 때의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 노무현 정권 때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그것이다.

가장 말썽이 많았던 게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씨가 주도했던 월계수회였다. 200만 명의 회원을 두었던 월계수회는 노태우 정권 당시 국회의원이 수십 명에 이르고, 행정부처 및 권력기관들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해 ‘여권 내 집권세력’으로 불릴 정도였다. 권력 독점이 얼마나 심했던지 ‘월계수회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 안기부 검찰 경찰 내무 재무 및 각 부처 20만 공무원 일동’이라는 명의의 문서가 언론사에 배포되기도 했다. DJ의 장남 홍일 씨가 사실상의 후견인이었던 회원 30만 명의 연청도 공기업 임원 인사의 다수를 차지해 공조직과 마찰을 빚는 등 위세가 상당했다. DJ 정권 때는 새로 여권 내 실세로 부상한 신주류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 간의 치열한 권력다툼도 골칫거리였다.

정권 내 사조직 문제나 권력투쟁은 이너서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내부 관계자가 작심하고 터뜨리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례도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 뿐이다. 도대체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히 알아야 처방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대부분 숨기기에 급급하니, 그 고질병이 지금까지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은폐의 배경에는 사조직 내부의 공범의식도 깔려 있을 것이다.

정두언 의원이 언급한 비망록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 의원이 알고 있는 게 진실이라면 차제에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역사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장은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겠으나 길게 보면 대한민국을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쓴 약’이 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도지는 고질병의 악순환을 누군가는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망록을 전당대회 결과와 연결짓는 것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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