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모래알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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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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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서울대보다 경찰대에 입학하기가 더 어렵다고 할 때가 있었다. 경찰 간부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1981년 첫 모집(120명)을 한 경찰대의 경쟁률은 220 대 1을 기록할 정도였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는 치안본부가 검찰을 깔볼 정도로 위세가 등등할 때도 있었다. 4년간 수업료 안 내고 졸업과 동시에 초급간부인 경위로 임관돼 취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선망의 대상일 만도 했다. 고교 진학지도 교사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수생들에게 “초기 졸업생은 출세가 보장돼 있다”며 경찰대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경찰대는 6월 현재 299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2000여 명이 경찰에서 일하고 있다. 고참 형사들은 새파란 형사반장을 모시면서 “애송이들이 뭘 알아야지…”라고 냉소하기도 했다. 개교 30년이 된 지금 경찰대 졸업생들은 우수한 능력을 발휘해 경찰 이미지 개선과 과학수사에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 내의 최대 인맥으로 크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직급별 전체 경찰간부 중 치안정감(1명)은 25%, 치안감(4명) 14.8%, 경무관(16명) 50%, 총경(158명) 33.8%가 경찰대 출신이다. 1기인 윤재옥 경기경찰청장이 올 1월 처음으로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청장 후보에 바짝 다가섰다. 간부후보생 출신의 한 경찰간부는 “1기를 비롯해 경찰대 출신의 요직 독식 현상이 심해 비경찰대 출신의 위화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4년 동안 선후배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맺고 현장에 나와서도 엘리트 의식으로 뭉쳐 파벌을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19일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대의 문제점을 직접 거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출신 연고에 따라 내부 집단이 형성되고 특정 집단의 독주체제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찰 스스로 경계하고 절제해야 하고 장차 제도개혁까지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해 8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된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한 황운하 총경(1기) 징계 방침에 대해 경찰대 출신들이 집단행동한 것을 경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청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청와대는 “공공연한 하극상이 용인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경찰대 1기인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한 하극상(下剋上) 사건을 계기로 경찰 내의 파벌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외견상 성과주의를 둘러싼 개인적인 감정 때문으로 보이지만 경찰청장 후보 가운데 한 명인 외무고시 출신의 조 청장을 흠집 내기 위해 공격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희락 경찰청장(사시 26회)이 최근 인사에서 강북서 사건 언론 보도에 대한 문책성으로 서울경찰청 홍보담당관을 전격 교체하면서 조 청장과의 불화설까지 불거졌다. ‘경찰청파와 서울경찰청파가 대립한다’ ‘비수사통에 대한 견제다’ ‘누가 어디에 줄을 섰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해 조직이 뒤숭숭하고 간부들은 눈치 보기에 바쁜 모양이다. 출세를 위해선 조직도 의리도 없는 ‘모래알 조직’이란 조롱을 받아온 경찰이라지만 수뇌부와 주요 간부들의 이런 행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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