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스페인 시위와 無償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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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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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해안에 산탄데르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유명한 순례길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중간에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곳에 뿌리를 둔 지방은행 산탄데르가 눈부신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금융위기 와중에 세계적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지금은 브랜드 가치로는 HSBC, BoA에 이어 세계 3위, 시가총액으로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한동안 벤치마킹 붐이 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있는 패션그룹 ‘자라’도 스페인이 낳은 굴지의 기업이다.

산탄데르나 자라처럼 일부 스페인 기업은 초일류이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스페인 공공부문은 발목을 잡고 있다. 엊그제 스페인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다. 사회당 정권 출범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공무원 250만 명이 가입하고 있는 스페인 양대 노총의 파업으로 공립학교와 공공병원이 상당수 문을 닫았고 고속열차 운행이 상당수 지연됐다.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고 연금지급액을 동결하려는 정부의 재정긴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파업의 명분이었다.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그리스 공공노조의 배부른 시위를 연상케 한다. 공공노조의 바람과는 달리 스페인의 상황은 심각하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고 포르투갈 헝가리가 휘청거리는 와중에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도 한 계단 떨어졌다. 디폴트 유력국가로 지목되기도 한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 재정적자도 국내총생산(GDP)의 11%를 넘어서 유럽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의 재정긴축 요구가 아니더라도 하루빨리, 그것도 세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공공노조가 자신들의 복지만을 챙기려는 데 대해 주위의 시선이 곱질 않다.

스페인 시위를 보면서 이번 지방선거에 핵심 이슈였던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떠올렸다. 복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전면 무상급식의 재원 문제와 포퓰리즘적 성격이 걱정돼서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배려하자는 데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실제 유권자들도 무상급식을 외친 후보 6명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재원이다. 무상급식을 하려면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교사 월급, 학교유지비 등 경직성 경비를 빼고 활용 가능한 예산 중 3분의 1이나 배정해야 한다고 한다. 예산을 그렇게 배정하면 교육격차 해소 등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렇다고 서울시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추가로 배정하기도 쉽지 않다.

전체의 복지를 강조해온 것은 어떤 면에서 공산주의 체제였다.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서로 보완해 가면서 이제는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보다는 특정 계층을 겨냥한 선택적 복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정된 재원 내에서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 출범한 일본의 간 나오토 민주당 정부는 총선 공약이던 ‘자녀수당 전액지급’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자녀수당을 올해는 반액, 내년에는 전액을 지급하기로 공약했었다. 중학생 이하 자녀 1인당 월 2만6000엔을 주는 포퓰리즘적 성격의 공약으로 말들이 많았다. 민주당 정부는 무리하게 공약을 추진할 경우 가뜩이나 문제가 있는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을 우려해 뒤늦게나마 궤도 수정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공약이라도 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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