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재정위기 예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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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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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전염병에 감염된 나라들은 온갖 치료법에 매달리고 있으나 효과가 신통치 않다. 정치인들은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고 재정적자를 대폭 줄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낙관하기 어렵다. 재정위기는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벗어날 수 있다. 노조와 국민의 반발이 거센 나라일수록 비관적이다.

포퓰리즘 공약이 악화시킬 재정사정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재정위기라는 전염병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높은 경제성장에다 국민이 세금을 잘 낸 덕분에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구체적 수치를 거론하면서 한국의 재정형편을 높게 쳐준다. 기획재정부는 우리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의 33.3%라는 IMF 발표 수치를 인용하면서 괜찮다고 한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6번째로 재정이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IMF는 한국을 칭찬해놓고 나서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에 관한 IMF 보고서는 대부분 한국 정부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됐다. 한국의 재정에 관한 IMF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에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그리스 정부의 분식회계가 도마에 오르지 않았는가. 게다가 재정통계는 금융통계보다 부정확하다. 금융통계는 이해관계가 큰 주주들이 버티고 감시하지만 재정통계는 오로지 공무원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IMF의 발표를 과신해서는 안 될 이유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처럼 겪어본 적이 없는 재정위기는 더 위험하다.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에 대처하느라 재정지출을 크게 늘린 결과 재정형편이 취약해졌다. 6·2지방선거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무상급식 같은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당선자들이 본격적으로 공약 실행에 나서면 재정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재정위기를 피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증세(增稅)다. 과거 권위적인 통치자들이 즐겨 쓰던 수법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 지나친 증세는 경제를 망치고 국민의 원성을 불러 정권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식사를 줄여야 할 비만 환자에게 밥을 더 먹이는 격이다.

재정 다이어트도 효과적이다. 세금을 축내는 공무원 조직을 슬림화하고 씀씀이를 줄이는 거다. 하지만 비만 환자에게 식사를 줄이고 운동을 하라는 것처럼 실천이 어렵다. 국가 재산을 민간에 파는 방법도 효과적이지만 실현이 쉽지 않다.

지금 우리 사정은 1970년대 말 미국이나 1980년대 초 영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군사적으로 소련에 밀리고, 경제적으로는 과다한 지출로 재정위기에 직면했다. 영국은 노조 파업과 분수 넘치는 복지라는 영국병에 시달렸다. 과감한 재정개혁으로 나라 살림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조직 슬림화로 재정 다이어트 해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복지 지출을 줄이는 대신 건강한 실업자나 복지 수혜자들에게 일자리를 줬다. 이런 식으로 재정지출을 줄여 생긴 50억 달러를 납세자에게 돌려줬다. 재정개혁의 든든한 지지자를 만든 것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맨 처음 한 일도 방만한 재정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튼튼한 재정의 뒷받침으로 소련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

불황이라 재정개혁의 적기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목욕탕은 비수기인 한여름에 수리해야 제대로 고칠 수 있듯이 지금이야말로 재정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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