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 Array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통일이 거추장스러운가
정치 흥정 위한 대북정책 접어야

‘北 무력침범 땐 즉각 자위권 발동…남북교역 중단’ 신문의 굵직한 제목에 겁난다. 물론 겁은 과장이다. 그러나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망나니 같은 북한이 추가 도발하고, 우리는 적의 진지에 화력을 퍼붓는다. 북의 장사포가 서울을 향해 불을 뿜고, 한미 연합군은 북의 핵시설을 정밀타격한다. 60년 전처럼 한반도가 다시 불타오른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우리 아들딸이, 그 아들딸의 아들딸들이 오순도순 삶을 이어갈 터전인데….

24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는 ‘평화통일’이 나온다. 한반도에 흐르는 서릿발 냉기와는 맞지 않다. 굳은 표정으로 그가 낭독한 담화문은 비장하고 단호했다. 천안함 이전과 이후의 대북 접근은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표현은 이를 웅변한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북한을 비판하며 책임을 추궁하는 주지(主旨)에 곁들인 수사(修辭)로 들린다.

제재 조치 발표에 북한은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심리전을 재개하면 조준 타격하겠다고 눈을 부라렸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날조극이라고 발뺌하면서도 켕기는지 내부 단속에 부산하다. 유엔 유럽연합 등 국제기구와 20여 나라가 북한을 비난했다. 중국과 러시아만 엉거주춤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심야성명까지 내며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돈줄 죄기가 강화되면 북한은 견디기 힘들다.

한반도가 동북아의 화약고로 떠오른 형국이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평화통일 운운하면 비판받기 십상이다. ‘우리의 소원’ 노래를 들어본 게 언제던가. ‘내 머리는 너(통일)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언제부턴가 우리는 통일을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으로 여긴다. 보수는 통일비용을 핑계로, 진보좌파는 북한 눈치 보느라 그러는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통일 없이 온전한 평화가 가능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살얼음판 정세를 보라.

“1990년 초 동구와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체제경쟁은 끝났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전략을 논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는 통일비용을 과장하며, 진보좌파는 북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통일에 침묵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의 지적이다. 좌우 모두 ‘분단의 관리’에만 골몰해 ‘통일의 지연’을 묵인했다는 비판이다.

천안함 폭침은 많은 것을 일깨운다. 2000년 6·15선언 직후 어느 정치지도자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영원히 사라졌다”고 했다. “북한 핵개발에 일리가 있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나왔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야권 인사들의 말 바꾸기와 닮았다. 햇볕정책이 북한을 개혁개방과 비핵화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 여기에 터 잡은 ‘통일 포퓰리즘’은 허구로 드러났다. 2006년 제1차 핵실험, 2009년 제2차 핵실험에 이은 천안함 어뢰도발을 보라. ‘깡패국가(rogue state)’ 북한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을 깊이 되새겨야 할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안보의식을 일깨웠다. 대북 안보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차원이 결코 아니다. 어둠이 짙으면, 오히려 새벽은 가깝다. 지금이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펴나갈 적기(適期)다. 국내정치를 겨냥한 속 보이는 대북정책은 폐기하자. 그리고 안보역량을 강화한 바탕에서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하자.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언젠가 눈사태처럼 닥칠 급변사태에 대비해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설득하는 외교역량도 길러둬야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북한 동포 여러분,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대결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입니다. 한민족의 공동번영입니다. 나아가 평화통일입니다.” 대통령의 말이 통일역량 강화의 시발점이길 진정으로 바란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