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칼럼]비판의 江, 선동의 江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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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속한 대학의 경영 주체가 미국 신부들에서 한국 신부들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조정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의 요셉 피토라는 예수회 신부가 1985년 서울을 방문했다. 그가 잠시 머무는 동안 전체 교수 앞에서 “신은 인간이 완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는 연설을 했다. 인류의 문화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물과 불을 다스리는 데서부터 시작됐다는 말처럼, 더욱 밝은 세상을 열기 위해 교육과 연구활동에 생을 거는 교수의 사명감을 우주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에서 지적한 깊은 철학적 진실을 담아서 장내는 숙연했다.

일부 가톨릭교회 신부가 6·2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하느님이 만든 강의 흐름을 인간이 변형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 기술을 통한 산업화를 주장하는 사람과 자연 그대로의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의 삶과 미래를 보는 두 가지 견해가 갈등관계에 있었으므로 산업화라는 과학문명의 발달이 가져오는 환경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인간의 삶을 과거로 되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일부 미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구 팽창 및 거기에 따르는 빈곤 문제와 더불어 산업화로 인한 오염과 공해,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로(zero) 상태에 머물 수 없으므로 과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 과학자상을 받은 모 교수가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작업으로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태양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메탄올과 같은 액체연료로 바꾸는 연구에 큰 진전을 보이는 데 세계의 관심이 모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기후 변화로 예상되는 홍수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4대강 정비사업을 시작한 것을 두고 일부 종교인이 신의 뜻을 거스른다고 하면서 절대적인 반대의 깃발을 들고 나설 일만은 아닌 듯하다. 집권 반대 세력도 대재앙에 가까운 환경 파괴를 가져온다고 경고하며 대안 제시도 없이 선동을 통한 물리적인 힘으로 중단시키려는 태도는 자제해야 한다. 홍수가 나고 물 부족 현상과 같은 치수(治水) 문제가 나타나면 책임은 그들이 아닌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과 보존, 오래된 논쟁

규모가 큰 국책사업은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국가발전을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면 지도자는 도전해야만 하지 않는가. 1993년 모 교수가 “영종도 신공항 건설은 어처구니없는 사업임을 확신하며 중단해야만 한다”고 외쳤던 인천국제공항은 지금 세계 일류 서비스 공항으로 평가받아 고용과 국부(國富)의 창출은 물론이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였다. 단기간으로 볼 때는 4대강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을 사회복지를 위해 쓰는 것이 좋게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 전체를 위해 더 큰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서울시민의 복지사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을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한국의 미(美)가 함께 호흡하는 깨끗한 세계적인 도시로 가꾸어 가는 일 역시 중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서울을 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작업은 서울시민의 생활 및 복지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는 서울을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하지만 아직 서울은 유서 깊은 사원과 고전적 건축양식의 현대적 보존은 물론이고 센 강의 물빛마저 이용했다는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정치인이 이를 두고 전시효과만을 위한 행정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종교-정치인, 같이 대안 찾아야

국회의 결정을 거쳐 예산이 집행되어 지금 진행되는 4대강 정비사업을 중단하라고 정치적인 발언을 토해내는 것은 일시적 선동일 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적은 수의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 속일 수는 있지만 많은 수의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야당은 건설적인 비판은 하되 대통령이 집권 기간에 국가발전을 위해 일하도록 도와야 우리도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일부 종교인도 인간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힘을 통해서 불완전한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의지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천부적으로 부여받았다는 점을 인정해 주기 바란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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