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태영]타고르의 나라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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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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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친숙한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타고르가 현재의 인도 땅인 콜카타에서 태어났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타고르는 방글라데시인과 같은 벵골족이었다. 그의 노벨상 수상작인 ‘기탄잘리’도 벵골어로 씌어졌다는 점에서 방글라데시 국민은 타고르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타고르의 생전에 방글라데시라는 국가가 아직 탄생하지 않았지만 방글라데시 국민에게 그는 영원한 민족의 대문호이다. 방글라데시 국가의 가사는 그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내년 타고르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도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공동 주관한다.

방글라데시는 방글라어(벵골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방글라데시 하면 인구밀도 세계 최고, 홍수 등 빈번한 자연재해, 저소득 국가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6000만 명으로 매년 6%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사회 인프라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인데 특히 ‘디지털 방글라데시 2021’을 모토로 정보통신 분야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독립 5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중간소득 국가를 이룩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테러와의 투쟁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방글라데시의 과감한 변화를 이끄는 여성 지도자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16일부터 3일간 공식 방한한다. 방글라데시 총리로는 15년 만이다. 하시나 총리는 국부(國父)인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장녀이다.

우리와 방글라데시는 1973년 수교 후 문화적 정서적 역사적 유사성을 토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의 언어는 어순이 같으며 문법도 유사하다. 우리의 쌀을 그들은 ‘짤’이라고 하며 밥을 ‘받’이라고 한다. 강(江)은 ‘강’이며 몸의 ‘배’를 ‘M’이라고 한다. 서남아 국가이면서도 쌀을 주식으로 하고 어른에 대한 공경, 자녀교육과 학문에 대한 열정 등 같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방글라데시 수출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의류 및 섬유 분야에서 양국은 활발한 협력을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의 기반 조성에 우리 기업이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15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의류와 섬유 관련 산업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방글라데시의 야심 찬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도 정보기술(IT) 에너지 조선 전자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제1의 항구이자 제2의 도시인 치타공에서는 한국 기업이 한국수출가공공단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단이 완성되면 10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 유치와 35만 명의 고용 창출이 예상된다.

필자가 방글라데시의 고위인사를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벤치마킹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가 더 많은 투자와 기술 이전을 해서 방글라데시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섬유제품 황마 농산품 등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리기를 바란다. 현재 12억 달러에 달하는 양국 간 교역에서 한국이 10억 달러가량의 흑자를 보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문화적으로 대단한 전통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인더스 문명에 속하여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시 등 현대예술에 있어서도 놀라운 수준을 자랑한다. ‘동방의 등불’인 한국과 ‘서남아의 등불’인 방글라데시가 함께 힘차게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조태영 주방글라데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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