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대 총장선거, 정치권 뺨치는 포퓰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서울대 총장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선출되는 총장은 서울대 법인(法人)시대를 열 첫 총장으로 서울대를 세계 일류 대학으로 키워내야 할 책무를 지게 된다. 서울대는 영국 더 타임스가 발표한 2009년 대학 순위에서 역대 최고인 47위를 기록했다지만 세계 일류는 아직 멀었다. 새 총장은 서울대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명문대학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비전과 개혁 마인드를 보여줘야 한다. 서울대가 법인화 이후의 발전기반 구축에 성공해 세계 초일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을 때 더 우수한 인재 배출을 통해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울대 총장선거 양상은 매우 실망스럽다. 세계적 일류 대학으로 올라서려면 교수평가를 강화해도 모자랄 텐데 교수 처우 개선이나 평가기준 합리화 같은 달콤한 공약만 난무한다. 어떤 후보자가 연봉 3000만 원 인상을 공약하자 다른 후보자는 ‘국내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교수 연봉 3000만 원 인상’이 총장 후보자의 비전이라고 해서야 그런 서울대에 과연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

선심성 공약경쟁은 총장 직선제의 폐해이기도 하다. 유권자인 교수와 교직원들이 개혁보다는 안주, 먼 장래보다는 당장의 처우 개선에 솔깃해하니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은 학과 구조조정이나 교수평가 강화, 평가와 급여의 연계 같은 개혁을 말할 엄두를 못 낸다. 파벌싸움과 자기 사람 챙겨주기로 인한 선거 후유증도 만만찮을 것으로 우려된다. 총장 후보자들도, 교수 교직원들도 ‘정치판의 포퓰리즘과 도덕적 해이’를 빼닮은 선거 행태는 배척한다는 최소한의 자존심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세계적 명문 대학들이 직선제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는 총장선발위원회가 수백 명을 인터뷰해 총장을 선발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07년 취임한 드루 파우스트 총장은 하버드대 출신도 아니다.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다트머스대도 타교(他校) 출신인 한국계 김용 총장을 선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헤드헌터 회사를 통해 뉴질랜드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존 후드 총장을 발탁했다.

서울대처럼 국립대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싱가포르대는 호봉제였던 교수들의 임금체계를 연봉제로 바꾸며 교수사회의 경쟁에 불을 댕겼다. 서울대 법인화는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학 스스로 자율과 책임을 갖고 인사 조직 재정을 꾸려 나가자는 시도다. 그럼에도 총장 선거가 서울대 방만화의 위험한 씨앗을 뿌리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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