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요즘 이라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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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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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新生)국이나 다름없는 이라크를 보면서 우리의 해방공간을 떠올려 본다. 새 나라를 세우자면서도 시위와 암살 등으로 몸살을 앓던 해방공간과 요즘 이라크 모습이 겹쳐진다.

시공은 다르지만 두 나라의 여건(與件)을 살펴보자. 한국은 일제의 통치를 받다가 65년 전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광복했고, 이라크는 7년 전 미국의 잘못된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담 후세인 독재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해방 한국은 어수선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러 파벌이 싸웠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승만파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구파, 러시아를 등에 업은 김일성파 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각 세력은 다시 세부그룹으로 나뉘어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통합은 쉽지 않았다. 또 당시 한반도는 국제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러시아·중국의 공산주의의 기세가 맞부딪치는 칼끝이었다.

독재자가 사라진 이라크에는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종교 간, 민족 간 갈등이 불거졌다. 다수파지만 후세인 시절 내내 수니파에 억눌렸던 시아파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쿠르드 정파도 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지난달 실시된 총선 결과는 그 아슬아슬한 민심의 균형을 보여준다. 반미 시아파 강경그룹도, 쿠르드 정파도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 진영이다. 알라위는 시아파이지만 수니파와의 통합을 외쳐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그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연합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이끌어가기 어려운 여건이다.

이라크를 둘러싼 주변 상황도 만만찮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수니파 강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막기 위해 수니파를 지원하고 있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과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뭉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라크의 주어진 여건은 우리 해방공간보다 못하다. 우린 한 민족이고 다만 이념에서 갈렸지만 이라크는 가장 풀기 어렵다는 종교가 다르고 민족도 갈린다. 이라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이라크는 이렇듯 분열요인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총을 겨눈 과거가 있다.

60여 년 전의 한국과 요즘 이라크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무리다. 경제규모 차이도 크고, 민주적 경험으로 봐도 그렇다. 이제 이라크는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검은 헝겊을 두른 여성들이 한 표를 행사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도 많다. 중동지역에서는 드물게 벌써 다섯 차례나 민주적 선거를 치러내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은 인류 최초 문자인 설형문자로 ‘길가메시 서사시’를 쓰고, 바퀴를 발명한 인류문명의 요람, 메소포타미아의 영화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라크는 퇴보했지만 광복 이후 우리의 경제적 성과는 눈부시다. 무에서 유를 이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숱한 부정선거와 체육관 선거를 이겨내며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정착된 듯하다. 그럼에도 아직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다. ‘모 아니면 도’식의 사생결단이 여전하고, 타협에 약하다는 점이다. 그 중간 회색지대를 찾기가 어렵다. 명분론은 우리 유전자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것인가. 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유연함이 어려운 것일까.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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