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대리투표 의원 사퇴’에 여야 없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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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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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의회 표결에서 한 의원이 대리투표를 한 사실이 드러나 떠들썩하다. 해당 의원은 하루도 못 버티고 2일 의원직을 사퇴했다.

경위는 이렇다. 자민당의 와카바야시 마사토시(若林正俊) 참의원 의원은 지난달 31일 고교 무상화 법안 등의 본회의 표결에서 결석한 옆자리 의원의 투표 버튼을 대신 눌렀다. 이를 알게 된 민주당은 1일 “국회 표결을 왜곡하는 전대미문의 사태이며, 의회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문제”라며 징계동의안을 국회에 냈다. 자민당도 감싸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은 그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 그는 이미 7월 참의원 선거 불출마를 밝힌 상태지만, 여야는 ‘대리투표 의원’을 단 하루도 국회에 머물게 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의 대리투표가 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의회는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법을 만드는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똑똑하게 보여줬다.

올해 초 자민당은 민주당 지도부의 불법정치자금 의혹을 이유로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론은 물론 다른 야당도 전혀 동조하지 않자 자민당은 사흘 만에 의회에 복귀했다. 싸우더라도 정해진 룰을 지키며 싸우라는 게 국민의 뜻이었다.

눈을 돌려 우리 국회를 보자. 2002년 11월 12일 본회의장에선 여러 명의 여야 의원이 결석한 옆자리 의원의 투표 버튼을 대신 눌렀다 문제가 됐지만 아무도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여야 모두 소속의원을 감싸기 바빴다. 민주주의보다 밥그릇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대리투표 의혹이 불거졌지만, 당리당략으로 이용하기만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결 원리와 법치주의 등이다. 우리는 흔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뤄졌고, 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대낮에 불법시위대가 경찰을 때리고도 큰소리치는 나라, 한밤중에 수천 명이 도로를 막고 ‘청와대로 쳐들어가자’며 몰려다녀도 속수무책인 나라, 불법시위를 막다 사고가 나면 경찰 수장이 옷 벗는 나라, 의장석을 점거하고 폭력을 휘두른 의원이 또 당선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또 있는지 묻고 싶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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