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정훈]아!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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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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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사리(보름 때의 조류)는 무서웠다. 해군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의 한주호 준위도 사리의 물살에서 순직했다. 대청도 장산곶 등과 마주한 복잡한 해안선 때문이다. 수위는 하루에 두 번씩 3∼4m를 올라갔다 꺼진다. 정조(停潮) 때에도 시속 2km의 와류(渦流)가 소용돌이친다. 바람이 강해지면 거친 파도가 덮치고, 습한데 기온이 올라가면 안개가 뒤덮인다. 이런 바닷속에 있던 뭔가가 천안함을 두 동강 내버렸다.

백령도엔 어민과 해병대가 함께 사용하는 해안이 많다. 백령도 주민은 해병대와 함께 일상을 시작해서 끝낸다. 군과 주민의 관계가 아주 좋은 곳으로 꼽힌다. 백령도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바로 맞닥뜨리는 곳이라서인지 주민은 웬만한 사건에는 놀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천안함이 기뢰에 의해 침몰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번에는 영 찜찜한 표정들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천 가는 연락선은 맘 놓고 탈 수 있나? 어선들도 전부 운항을 중단하고 다른 기뢰는 없는지 수색부터 해야지. 배가 못 뜨면 생필품이 들어오지 않아 살 수가 없게 돼요.” 역시 백령도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은 달랐다. 섬사람들은 천안함 참사의 원인이 기뢰로 밝혀진다면 어선과 여객선이 계속 운항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컸다. 해군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함정을 불러들여 대대적인 탐색작전을 펼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주민은 “한때 백령도 주민을 전부 인천으로 이주시키는 것을 검토했는데, 해병대가 반대해 무산됐다. 해병대는 민간인과 함께 살아야 사기가 유지된다고 해 주저앉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준위가 순직한 날 해병 6여단을 방문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관측초소(OP)에서 장산곶을 비롯한 황해도와 평안남도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 부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북한 해군은 수시로 기지에 배치된 경비정을 교대한다. 그때마다 경비정 이동 상황을 정리해 놓는 것이 이 부대의 임무 중 하나였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위기 때마다 북한의 해안포 위협이 거론된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해안포 진지도 가봤다. 적 함정을 잡으려면 직선으로 포탄을 날리는 직사포가 필요하다. 가장 우수한 직사포는 전차포다. 살아 있는 전차는 현장을 바꿔가며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대가 보유한 전차는 6·25전쟁 무렵 나온 M-45형이었다.

백령도 주둔 해병대는 자기 병력과 비슷한 주민과 백령도에 포진한 여러 정보부대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수색대를 고무보트에 태워 사고 현장을 수색하고, 전 해안엔 보병대원과 의무대원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적 지상을 공격하는 무기는 곡사포이다. 해병대는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국산 K-9 자주포를 갖고 있다. 언론이 ‘북한 해안포 위협이 심각하다’는 보도를 반복해준 덕분에, 육군 주요 부대와 함께 K-9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백령도 인근은 북한 공군기의 출몰이 많은 곳이라 방공포병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보유 무기는 구형이다.

해병대원들은 뿌옇게 안개가 내린 밤, 캄캄한 바다로 불을 비춰놓고 우리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백령도는 일상처럼 긴장과 생활이 병존하는 섬이다. ―백령도에서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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